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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김소민

by 푸휴푸퓨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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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한 적이 없다.

  사는 게 창피해서 읽기 시작한 책. 내 인생이 수치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내 맘 같은 제목을 보고 극약 처방이 되어주겠다 싶었다. 가벼운 젊은이의 에세이 정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깊었다. 나는 언제까지 나에게 함몰되어 있으려 하나. 

 

 

 

 

한 마음챙김 수련에서 평생 가장 화났던 순간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 순간을 고르는 게 힘들었다. 너무 많으니까. 인간이면 분노할 이야기를 했는데 법사는 "그런데 왜 화가 나냐"고 했다. 열불 뻗쳐 설명을 보태는 중에 법사가 말했다. "당신은 한 번도 상처 주지 않은 사람처럼 말하네요." 내가 내게 했던 거짓말 중 가장 큰 거짓말을 들켰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로 며칠 째 마음 고생을 하던 차였다. 괴로움에 몸이 떨려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화를 내고 곱씹을수록 절망이 나를 갉아먹었다. 살고 싶어 이제 그만 생각을 멈추기를 바랄 때 법사의 말을 읽었다. 그래. 정말 오로지 분하기만 하니. 너의 잘못은 하나도 없니. 아니, 나는 그렇게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다.

 

항상 타인에게 촉수가 서 있지만 정작 궁금한 건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비친 나다. 그 사람에게 비친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은 그저 거울이자 내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도구로 전락한다.

  문제는 마무리되었고 이제 내 앞에서 그 일을 다시 언급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뼈아프게 괴로운 건 나를 보는 회사 사람들의 시선에서 내가 없는 독도 만들어내 발견하기 때문이다. 평소와 같은 시선에 나는 홀로 찔린다. 저 무표정은 나를 향한 경멸이 아닐까. 늘 웃던 분이 오늘따라 정색을 한 것 같은데. 나의 검은 마음이 온통 타인의 얼굴에 묻어 있다. 

 

내가 낯선 욕망의 숙주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관리라면 내 관리도 안 되기 때문에 부장 따위는 공짜로 줘도 싫다고 믿었는데 막상 다른 사람이 부장이 되면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성질을 부린다. 이 분노와 결핍은 누구 것일까?

  인정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해 일하겠다며 그렇게 자주 다짐했지만 나는 또다시 앞날이 하찮을 것임을 예상하며 근심한다. 하찮으면 어때. 괜찮기로 했잖아. 나를 이곳의 판단에 맞춰 재단하고 미워하지 않기로 했는데, 자꾸만 바깥의 평가에 매이고 휘둘린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야기를 하며) 모멸감 지뢰가 깔린 세상으로 우리도 강제 로그인된다. 죽도록 아이템을 끌어 모아 레벨업할 수도 있다. 아니면 마음의 내공을 쌓아 '그까짓 모욕쯤이야 네 입만 더럽지'라며 자존감 만렙으로 넘길 수도 있다. 그래도 '형석'은 나오고 또 나온다. 우리가 게임의 법칙을 바꿀 때까지.

  더 단단해지자고 아무리 되뇌어도 짓밟혔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마음에서 피가 흐른다. 애써 괜찮은척 하지만 언제든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 사실에 분노하는 게 아닌 절망만 하는 유약한 내가 과연 판을 바꿀 수 있을까. 꼭대기의 누군가가 아래를 밟는 게 회사라는 곳의 태생적 특징이 아닐까. 그게 바뀌면 그것을 회사라 부를 수 있기는 할까.

 

홀로 행복할 수 없다면 둘이서도 행복할 수 없다. '무엇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라면 그 '무엇'에 반드시 매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가? 그 '무엇'이 없는 삶을 한번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무엇 없이 살지 못할까. 물건에 매이고 싶지 않아 벌써 1년 넘게 미니멀리즘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물건이 아무리 줄어도 여전히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오히려 남는 공간과 비는 시간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이 됐다.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고,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 절절히 매여있었다. 내게 가장 필요 없는 것임을 그렇게 잘 알면서. 뒤돌아서면 잊을 사람들에게 내 삶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또 마치 처음처럼 다짐을 한다.

 

성냥불을 못 켜서 죽어버릴 수도 있는 한 사람이 고통을 견디며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은 우주만큼 불가사의하다.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루종일 민원 업무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친구가 내게 되물었다. "야! 하루를 살아내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나는 매일 오늘 하루도 살았다, 장하다, 그러고 그냥 잔다." 왜 사냐고? 오만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불을 걷어차고 참치 캔을 까먹어야지. 오늘은.

  왜 사냐고 묻는 건 진부한 일이라던 글(방콕여행자, 박준)을 마음에 새긴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는 왜 사는지를 내게 묻고 있다. 현재에 집중하고 잡념을 버리자고 나를 두드리도 또 두드려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모든 걸 벗어버리고 가볍게 날아갈 수 있다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에 발이 묶인 내가 늘 하던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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