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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진짜 공간 - 홍윤주

by 푸휴푸퓨 202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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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정리하면서 공간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진다. 원래도 집순이었지만 한층 더 중증이 되었지. 누가 어디에서 이야기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만 믿고 덥석 읽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적 없던 공간에 대한 소개여서 굉장히 신선했다. 평생을 아파트 키즈로 산 내게는 더욱 그랬다.

 

 

  책은 방 주인 인터뷰, 다양한 주택의 입면 관찰록, 실생활이 묻어나는 사소한 개발들, 비공식 건축물, 동네와 도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정형화된 공간이 아닌 공간 속의 사람과 삶에 밀접하게 존재하는 공간을 소개한다. 단 하나도 같은 공간이 없다. 그 모든 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개성이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는 몇 배 더 멋스럽다. 아래의 몇 구절을 통해 공간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방'은 사람 생긴 것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각자 자신의 조건과 필요, 성향 등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혹은 계획적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까닭이다. 

 

요즘엔 디자이너와 일반인(?)의 경계를 잘 모르겠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은 특이하지만 기능성이 떨어지는 뭔가를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 것에 이러쿵저러쿵 과도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도 질린다. 그래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솔직한 모습에 더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앞에 닥친 생계를 위한, 즐기기 위한, 혹은 둘 다를 위한 삶의 면면에서 배울 것들이 많다. 기름기 없는 생생한 장면들에서.

 

아파트나 쇼핑센터는 어딜 가나 다 비슷하지만 비닐 장판이 덮인 평상과 포장마차, 오래된 건물은 지역마다 다르다. 그런 것에서 그 지역의 느낌을 알 수 있다. 비공식 건축은 지역의 성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자, 효율을 위해 균질화하려는 도시의 관성에 저항하는 장치다.

 

  첫 번째 장 '네 방을 보여줘'는 8가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다. 아무래도 몇 년 전에 출간된 책이어서 그런지 시세가 요즘보다 꽤나 낮아 부러웠다. 하지만 첫 인터뷰이의 집부터 대체 여기서 어떻게 사나 싶기도 했지(스스로도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자러 가지 않는다는 낙서가 뒤덮인 방이라니, 그럼 왜 그냥 두고 사는지 쾌적한 방을 평균 이상으로 추구하는 나는 좀 의아했다). 잡지에 나오는 방이 아닌 진짜 현실적인 방에 대한 소개라 면면이 흥미롭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두 번째 장 '정직한 입면'은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다양한 건물의 뒷모습에 주목한다. 개조된 건물의 뒷면이나 측면이 앞면에 비해 훨씬 생활감이 묻어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뒷골목의 어느 음식점에 갔다가 앞 건물의 뒷면이 늘 보아왔던 앞면에 비해 너무 복잡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생생한 누추함에 애정을 갖고 발견해내는 저자의 넓은 시야가 멋지다. 저자가 하나하나 짚어주는 (그가 추측하는) 건물의 변천사를 읽는 일도 재밌고. 이래서 이렇게 확장했을 겁니다. 이렇게 수리하고 또 이렇게 덧붙였을 겁니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해결책에 법칙은 없다. 

 

  세 번째 장 '생활 기술과 창작'에서는 주택과 다세대 빌라가 모인 주거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주거지 사이사이에 비정형적으로 포진된 온갖 텃밭은 아파트 화단만을 보고 자란 내게 진심으로 굉장해 보인다. 나는 베란다 스티로폼 박스에 상추 몇 개가 꽂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고작인데. 그 외에도 일상의 패턴에 맞춤화되어 구성된 수레, 작업 공간, 포장마차 등이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건물 관리 공간에 대한 관찰도 있는데, 내가 그저 살풍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면 저자는 그 속에서 또 특징과 개성을 포착해낸다. 참나. 대단하다.

 

  네 번째 장 '비공식 건축'에서는 건축 대장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생활속 변형을 보여준다. 건물 사이사이로 생겨나는 공간, 다리 위의 공간, 거리의 공간.. 얼마 전 보행로 위에 우산이 펼쳐져 있어 의아했던 적이 있는데 걸어가며 뒤쪽을 보니 할머니 여러 분이 치킨을 드시고 계셨다. 올해 부쩍 그 보행로에 어르신들의 나물 좌판이 깔리기 시작했는데 점차 확장되더니 편안한 취식 공간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더라고. 넓어지는 영역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책 속의 공간들도 그렇게 시나브로 움직였겠지.

 

  다섯 번째 장 '공간 이야기'에서는 노상을 관찰하며 발견한 생활과 변화를 소개한다. 산촌에서 살던 누군가는 산과 들에는 없는 오밀조밀한 골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아파트 키즈인 나도 별반 다를 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골목길 감성을 좋아하지만 정작 자주 다닌 골목은 없으니까(자주 다닌 아파트 출입구는 있다..). 대학교를 통학할 때 매일 보며 여기는 왜 화랑이 몰려있을까 궁금했던 삼각지 화랑가의 유래나 종종 지나다니는 가산디지털단지의 수출의 다리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다. 건조해 보이는 공간도 자세히 보면 이야기가 있기는 있구나. 

 

  이 책 덕에 회색 도시 서울을 좀 더 좋아하게 됐다. 출판사 프로파간다의 책은 프로파간다만의 세련된 것 같으면서도 현실에 붙어있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어 좋아한다. 이 책도 그 분위기를 아주 잘 살린 책이어서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책을 집필하고 기획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신선한 책이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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