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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 하완

by 푸휴푸퓨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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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인생은 끝없는 싸움이라 생각했다. 인내하고, 한계까지 나를 밀어붙이고, 뭔가를 극복해서 승리를 거머쥐는. 뭐 대충 그런 게 인생이라 여겼다. 이제는 싸우지 않기로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도 않는다. 인생의 커다란 문제들은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맘에 안 들고 답도 없는 이 인생과 잘 지낼 수 있나 고민할 뿐이다.

 

제목을 보고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떠올렸다

 

  하완 작가의 지난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고 극심한 감동을 했던 바(기록이 남아있다), 이번 책을 발견하곤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완 작가의 에세이는 여타 감성 에세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색다른데 특히 마지막 한 줄의 위트가 산뜻하다. 어디선가 읽었음직한 소확행의 장점에 대해 읽으며 심드렁해지려는 찰나 그러니 트와이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행복해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고, 열등의식은 비교 때문에 생기는 거라는 법륜스님의 물컵과 물병 이야기를 기껏 소개하고는 그래도 물병이 되고 싶다며 도로아미타불을 외운다. 

 

  요즘의 에세이는 우리 모두가 지닌 찌질한 면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려 한다. 인스타그램의 사진 같은 글이 인스타그램에서 저자의 인기와 맞물리는 게 요즘 최고의 성공 아닌가. 하지만 침대 위에 쟁반이며 커피며 디저트를 올린 사진을 볼 때 얼마나 부지런하게 세팅했을지 생각하면 솔직히 우습다. 얄팍한 허세보다 땅에 발 디딘 솔직함이 좋지. 하완 작가는 삶의 찌질을 필터 없이 쓰는 데 타고났다.

 

  내 눈에 하완 작가가 찌질하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살기 때문이다. 면도기 5중 날이 비싸서 무뎌질 때까지 악착같이 쓴다는 궁상의 토로는 그래서 클래식 면도기를 쓰게 되어 이제 면도가 즐겁다는 이야기와 함께하면 취향으로 변한다. 그래. 작가의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 

 

  지난 책보다 제목이 직관적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책을 읽고 나니 측면이 낫다는 이야기의 맥락이나 제목으로 삼은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읽고 나면 아는 제목과 읽기도 전에 읽고 싶은 제목은 전혀 다르지 않을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제목이 너무 기가 막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글은 평양냉면 중독되듯 서서히 중독될 글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인테리어가 타협이듯 인생도 타협이라는 글을 보며 영화 '프란시스 하'를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이러구러 산다. 그 개별이 늘 반짝이지는 않지만, 다 똑같은 것보다 멋있는 건 확실하다. 익명의 롱패딩 인간이 멀리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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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오래 노출되어 방문자가 많았다. 역시나 매력적인 책이란 이야기겠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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