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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아무튼, 떡볶이 - 요조

by 푸휴푸퓨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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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떡볶이'는 저자 요조가 어느 방송에서 말한 일화 덕에 처음 발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기가 이 책에 '떡정'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모두가 아는 단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강연에서 뜻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고. 북토크에서 모두가 진지하게 떡정의 뜻을 듣는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지만 이해는 간다. 나도 떡정이라는 단어를 안지 몇 년 되지 않았다(미운 정 고운 정은 알지만 떡정이라니). 대신 나는 '붕가붕가'라는 단어를 스무 살에 배웠는데, 그 뜻을 모른 채 홍대 골목에서 붕가붕가!!!라고 크게 외쳐 대낮부터 친구를 몹시 당황하게 만든 기억이 있다.*

*당시에 나와 친구는 언니네 이발관이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붕가붕가라는 이름이 '붕'이 들어가 귀엽다며 붕가붕가 붕가붕가 말을 되뇌었고 친구는 당황하며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영문을 몰랐던 내가 귀엽기만 하다며 크게 "붕가붕가!!!"라 소리쳤는데, k-장녀 유교걸 친구가 손사래를 치며 멀어지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어쨌거나 요즘 젊은이는 나처럼 떡정 말고 붕가붕가를 알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응떡을 하도 시켜먹어 해 덕복(德福)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내가 이 책을 빠르게 펼치지 않은 이유는 주변의 생각과는 달리 난 떡볶이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대문엽기떡볶이가 급부상한 이후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내게 떡볶이는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이 학교 앞 떡볶이 대신 매운 떡볶이로 가득 차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혜성처럼 나타난 응떡 부상맛(전혀 맵지 않은데 적당히 달달하고 치즈가 환상이다)을 조금 즐겼을 뿐이다. 밀떡과 쌀떡의 차이점을 논하며 즐거워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어디에도 저자의 떡볶이 취향을 주장하는 이야기가 없다. 심지어 마지막 장의 제목은 "아무 떡볶이나 잘 먹으며 살아온 인생"이라 이 책을 진작 집어 들지 않은 나의 편협함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특출 나게 잘 쓴 에세이라 더욱 그러한데, 요조는 떡볶이를 화두로 삶의 다양한 장면을 이야기한다. 떡볶이를 함께 먹은 사람, 떡볶이 집 사장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음식 맛에 컴플레인을 걸었던 떡볶이집이 망한 이야기까지. 아무리 전국민적 사랑을 받는다 해도 그저 간식인데 그렇게 깊은 이야기가 있을 수가 있나. 

의미와 무의미는 정말이지 뫼비우스의 띠 같다. 경계를 도무지 나눌 수가 없다. 무의미한가 싶으면 의미하고 의미한가 싶으면 무의미하다. (중략) 의미와 무의미가 제멋대로 뒤엉키는 삶 속에서 '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다만 그것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밤이었다.

  각 잡고 앉아야만 깊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씀.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느니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라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데 요조가 이 책 내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삶의 크고 작은 즐거운 소란을 떡볶이로 한데 엮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부산에 가서 떡볶이를 먹는 이야기를 읽노라면 내가 부산에서 떡볶이를 먹느라 뛰어간 것 같고, 김상희(친구)가 김상희(원수)로 변할 때에는 피식피식 웃음이 샌다.  

인간적으로 그동안 떡볶이를 너무 과잉 섭취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 와중에 내가 응떡과 마주했을 때와 유사한 기분을 밝혀 동질감마저 느꼈다. 어느 날 나의 별명이 '덕복'이란 소문이 회사 동기들 사이에 퍼졌다. 그러자 모두에게 '점심때 응떡이나 시켜먹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에겐 두어 주에 한 번이지만 나는 하루 걸러 하루로 떡볶이를 먹어야 할 처지가 됐다. 제안을 거절하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떡볶이를 나하고만 안 먹는 게 아니냐는 섭섭함을 사기도 했다. 떡볶이를 원래 그렇게 선호하지 않았다고 밝혀봐야 믿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아무 떡볶이나 잘 먹으며 살아온 평화롭고 단조로운 나의 인생 가운데 조금 재미있게 느껴지던 몇몇 순간들의 기록이 당신에게도 재미있게 읽히기를 요행하며 이 글을 썼다.

  밝히건대 저자의 의도 그대로 아주 즐겁고도 편안하게 이 책을 읽었다. 때론 무겁고 때론 살만한 삶에서 좋아하는 게 많으면 살만한 시간이 길어지더라. 나는 책을 읽고 유튜버 '밀라논나'를 떠올렸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를 처음 한국에 들여온 장명숙 할머니는 색 조합 따위 어렵지 않은 센스를 가졌지만 주황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자주 말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색을 정해두면 물건을 고를 때 쉽게 선택할 수 있어 참 좋지 않냐며. 요조의 떡볶이가 내게는 그 주황색처럼 느껴졌다. 모든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지만-비건이지만 육류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솔직해서 멋지다- 특히 떡볶이를 좋아하고, 그러나 편협한 떡볶이가 아닌 모든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점. 매력이 넘치는 언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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