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의 변화
1.
1미터짜리 옷장 두 개가 10년 전 이사 올 때부터 방에 있었는데 그중 한 개를 다른 방으로 옮겼다. 그만큼의 짐도 치워냈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책상도 서랍도 많이 비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옷장이다. 덕분에 방이 넓어져 스트레칭할 때마다 행복하다.
2.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직급 이름이 바뀌었다. 지난번 직장 동기가 승진할 시기에는 나도 옮기지 않았더라면 변했을까 상상하며 이직하지 않았을 경우도 생각해봤다(승진을 위해 이직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결론만 나왔지만).
어찌어찌 버텨내니 직급이 달라졌고 아마도 이 직급으로 몇 년쯤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바뀌었다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가서 바뀐 것이기에 마음이 많이 동하지는 않는 변화.
3.
네가 퇴사를 하던 작년 11월에는 2020년이 코로나로 얼룩질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눈앞이 암담한 지경에서도 최선을 다한 너는 지인의 귀띔으로 서울시의 청년 일자리를 지원했다. 청년 일자리를 하면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면접을 보게 됐고 그게 또 붙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회사의 생각보다 괜찮은 자리. 아직 완벽하게 안정적인 상황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만한 결과여서 네가 참 짠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내 마음이 초조해서 너를 많이 다그쳤는데, 돌아보니 그 다그침을 조용히 감내해주었단 것이 느껴져 몹시 고맙다. 네 옆에서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하다.
4.
네이버에 블로그를 열었다. 중학교 때 꽤 길게 블로그를 했었는데 어느 날 폭파해버렸다(같이 블로그를 하던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대학생 때 티스토리 블로그를 연 이후로 네이버는 쳐다보지 않았고 진지한 티스토리 블로그는 글이 점점 무거워져 버겁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차에 회사 동기와 장난처럼 블로그 이야기를 했고가 파도에 휩쓸리듯 네이버 블로그를 열었다. 아기자기 일상을 담아보자는 작당을 해서 나는 종종 뭘 먹었다느니 뭘 샀다느니 하는 잡담을 쓴다. 여기는 생각을 담아서 좋고 거기는 조그마한 마음을 담아서 좋다. 양쪽 다 화이팅!
2020의 성과
1.
채소 본연의 맛을 알게 되었다. 회사 동기의 추천으로 10월부터 트루라이프 호밀에서 샐러드를 시켜먹기 시작했다. 토핑이 다양하고 매일 새벽 배송을 해준다며 한 개 먹어보라고 주었는데 글쎄, 딱 내가 원하는 샐러드잖아! 엄마와 언니에게도 전파해서 두 달간 매일 세 개의 샐러드를 받아먹었다.
두 번째 결제를 하던 즈음 엄마는 샐러드 값이 비싸다며 다음 달부터는 직접 샐러드를 만들어주겠다 하셨다. 긴가민가했는데 글쎄, 다양한 고기 종류에 버섯, 리코타 치즈, 방울토마토, 삶은 콩 등이 다채롭게 올라가도록 만들어주시지 뭐야. 요즘 신나게 먹고 있다.
샐러드를 몇 달간 먹다 보니 채소의 맛을 느끼게 됐다. 처음에는 맛이 없어 다른 토핑이나 채소에 섞어 억지로 씹던 양배추가 이제는 별로 싫지 않은 건 대단한 일이다. 채소 별로 맛이 달라 다양한 맛이 나니 굳이 소스를 뿌릴 필요도 없어 좋다. 미각이 이렇게나 둔했구나 싶어 놀랍다. 이게 원재료의 맛인가!
2.
작년부터 올 초까지 Mendeley 이용법 영상을 싹 제작했다. 아예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따라 할 수 있게 한 시리즈였는데 어지간한 기능은 다 설명해둬서 꽤 괜찮은 구성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영상이 예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Mendeley 교육을 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두근거리면서 교육을 준비했지만.. 평소에 Mendeley를 쓰지 않던 컴퓨터라 교육하며 버벅거린게 아쉽다. 미리 한 번쯤 돌려보았어야 했는데, 시연할 때 기존에 했다고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해 놔두었던 게 영 속상하다(방심하면 안되었는데 말이야). 어쨌거나 기존에 구성안이 있던 EndNote 교육이 아닌 아예 새로운 교육을 하나 해냈다는 점은 왕왕뿌듯! 2021년에도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혹시 그전에 인사발령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 반 호기심반으로 내년을 기다린다.
3.
허리둘레 앞자리가 바뀌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늘 비슷한 몸무게 언저리까지만 감량하는 내게 새로운 숫자의 도래는 진심으로 기쁜 일이다. 2년 전의 건강검진 때보다 올해의 검진에서 10센티가 줄어들어 이미 기뻤는데(2018년에 측정했던 분의 오류가 의심되긴 한다) 그것보다도 줄어 앞자리가 바뀌었다 이거야.
정말 얼마만의 숫자인지 진심으로 반갑다. 내년에도 새로운 숫자를 봐야지. 꾸준히 운동하면 몸무게가 왕창 빠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지방을 근육으로 대체할 수는 있지 않겠나 싶다.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다!
2020은 내게 '흔들리는 일상을 버텨내는 내면의 힘'이었다.
이재갑 교수님의 이야기를 더 빨리 들을 수 있었더라면 비일상을 일상으로 인정하는 시간이 좀 당겨지지 않았을까, 코로나 블루도 짧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아쉬운 마음 정도로 넘길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행운이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아프지 않아 다행인 한 해였다. Farewel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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