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의 사건
코로나19를 일단 꼽아본다. 판데믹을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많은 분이 수고해주신 덕에 그래도 안전하게 살았지. 온갖 야외 활동을 모두 놓고 남은 게 없어서 우울하기도 했지만 고작 우울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코로나와 새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 1년 내내 고군분투했다.
코로나 외의 사건을 꼽자면 평생 기억에 남을 한라산 등반도 있다. 굳이 '평생'이라 하는 것은 살면서 또 올라갈 확률이 높아보이진 않아서. 그외에 회사에서 처음으로 승진을 해봤고, P2P 투자 실패로 조금의 돈을 날리기도 했다. 명품가방을 사볼까 했는데 나에게 내리는 벌로 가방을 포기했다. 아깝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되는 돈이라 다행이고 가방이야 어쩔 수 없지. 사는게 그렇지 뭐!
2. 올해의 어플
Evernote. 메모 어플을 특별히 쓰지 않고 살았다. 몇몇 어플의 이름만 아는 정도였는데, 대학생 때 들었던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김중혁 작가가 에버노트에 뭐가 많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작가라면 모름지기 에버노트에 글감을 많이 쌓아두는 게 멋이겠다며 동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올해는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자는 계획을 세웠다. 양에 대한 욕심이 생기니 쓰고 싶은 무언가가 잊혀질 게 아까웠다. 컴퓨터와 핸드폰에서 동시에 쓸 수 있는 메모장을 고민하다 과거의 동경이 떠올랐지. 정말 1월 첫 주부터 쓰기 시작한 에버노트는 글감과 메모가 적당히 섞인 소중한 어플이 되었다. 이러다가 프리미엄 결제를 할지도 몰라. 책 이야기를 적다 보니 2018년 어플로 꼽았던 '독서 다이어리'를 잘 안 쓰게 된 건 조금 아쉽다.
3. 올해의 이벤트
다음 메인에 내 글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어느날부터 tromm으로 시작하는 경로에서 유입되는 방문 기록이 생겼다. 검색해보니 그 경로가 찍히고 나면 다음 메인으로 간다더라고! 별 일 없이 몇 번의 글이 지나가고 기대감도 줄어들 때쯤 니트족에 관한 책이 처음으로 다음 메인에 등장했다.
그날 이후 책 리뷰를 올리면 대체로 다음 메인에 오르는 (감사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첫날처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지는 않는데, 방문객이 몇 천 명 단위로 높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꾸준히 글을 쓰리라고 다짐하는 좋은 동력이 되어서 책 리뷰만이 아닌 일상 글도 자주 올릴 수 있어 좋았다. 리뷰 대신 일상 글에 주력해서 연말인 지금은 메인에 안 간지 오래됐지만, 나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사건.
4. 올해의 다이어트
2월까지 열심히 운동하며 마라톤에 대한 기대를 불태우던 와중 코로나가 터졌다. 헬스 아웃. 마스크를 쓰고 버티던 결국 필라테스도 아웃. 여름에는 대체 이 사태에 어찌 적응할지 고민하며 뒹굴고 가을에는 홈트에 겨우 안착했다. 홈트로 다이어트는 안되더라고. 10월 건강검진 결과 나는 2년 간의 노력을 통해 공식적으로 건강한 돼지가 되었다. 건돼. 나쁘지 않지, 하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나보다 먼저 건강검진 결과표를 뜯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알던 몇 년 전이랑 숫자가 많이 다르지? 지난 2년 간 줄어든 허리의 10센치는 보이지 않고 늘어난 3킬로만 보였던 엄마는 당장 피티를 끊어주었다. 오예, 공짜 PT! 덕분에 11월과 12월에는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고, 신년에도 연결하여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내년에 헬스장이 문을 열면 내돈내산으로 피티를 등록할지도 모르겠다. 1:1 케어가 좋긴 좋더라고.
5. 올해의 소비
올 해 사서 가장 잘 쓰는 물건은 바로 요가매트. 최근 2~3년 간 모든 가족이 언니가 다이소에서 산 매트 두 개를 돌려쓰며 운동을 했다. 낡기도 낡았거니와 고정력이 너무 부족해서 조금만 운동해도 이리저리 밀리고, 쿠션도 좋지 못해 별 효용이 없었다. 모두 새 매트를 원했지만 그냥저냥 때우고 있던 상황이었다.
필라테스 학원에서 방역의 의미로 개인 매트 공구를 열었다. 시중에서는 4만 원 정도에 사야 하는 매트를 25,000원에 구입할 수 있어 엄마도 언니도 모두 참여했다. 매트에 무늬가 있어 일자로 몸을 맞추거나 적당한 넓이로 다리를 쉽게 벌리고 설 수 있다. 밀리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지. 매일 펼치고 접기를 반복한다. 오래 써야겠다.
6. 올해의 성과
몇 가지 습관을 통해 소비를 위한 소비 패턴을 아예 없앴다. 미니멀 라이프를 잘 체득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똑똑 가계부' 어플을 활용해서 용돈 가계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매일 지출을 복기하니 잠깐 참으면 의미가 없어질 몇 천 원의 쇼핑을 쉽게 접었다.
두 번째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했다. 정리는 홀가분한 작업이지만 힘들기도 한 것이, 버리기도 품이 들고 팔기도 품이 든다. 처분할지 말 지 가족과 옥신각신하기도 하고. 그렇게 힘들여 줄인 짐을 한 순간의 충동 때문에 늘리기는 싫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며칠을 고민하게 됐다.
세 번째로는 '당근마켓'을 열성적으로 사용했다. 짐도 줄이고 소소한 용돈도 벌었다. 당근마켓에 심취하니 자연스럽게 쇼핑할 시간이 없더라. 당근마켓 채팅이나 매물 관리에는 시간이 꽤 들었다. 수익 내역을 정리하고 쇼핑 금액만큼 차감을 시켰더니 대체 뭘 사고 싶지가 않더라고. 어떻게 번 돈인데! 소비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는커녕 과거의 소비를 모두 반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기껏 사서 반값도 되지 않는 수준에 공들여 팔고 푼돈에 기뻐하는 모양이라니). 소비를 크게 줄였는데도 힘들지 않아서 놀랐다.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건을 사는 대신 물건을 정리해 깔끔한 공간을 보고싶어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경제가 무너질 텐데. 이쯤 되면 자본주의가 잘못이라 해야 맞을 듯싶다.
7. 올 해의 생활패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멋진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스트레칭하기. 상반기에 문득 서른이 되기 전에 몸에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떠오른 것이 아침 스트레칭이다. 몇 년 전 '꽃보다 할배'에서 박근형 할아버지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눈여겨 보았는데, 당시에 박근형/이순재 할아버지가 스트레칭은 평생 아주 좋은 습관이라며 극찬을 했다. 기억을 떠올려 아침 10분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게 어찌나 힘든지 몇 달이 걸렸다. 그래도 결국 정착이 되더라고. 편하게 10분씩 하다가 아침 운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세워 한 달 간 운동과 다른 긴 스트레칭까지 합쳐 50분 정도를 꿈지럭대기도 했는데, PT를 시작하면서 다시 줄어들었다. 대신 10분 보다는 긴 30분으로(다노의 아침 스트레칭과 레전드 하체 스트레칭을 매일 하고 있다).
몸이 유연해져서 만족도가 높고, 아침 시간을 나름 활용한다는 기쁨도 있다. 그래도 아직 다리가 180도씩 찢어진다거나 폴더처럼 접히지는 않기 때문에 내년에도 쭉 노력을 이어가겠다. 그렇게 평생! 멋진 사람!
8. 올 해의 목표 달성 & 돈 쓰기 원칙
2020 올 해의 목표 달성 :: 성공 3개, 실패 3개, 세모 2개 (성공률 50%)
목표 | 성공 여부 및 코멘트 |
여행 2회 이상 해보기 | 성공! 전주 당일치기 여행, 가족들과 함께한 여수 1박2일, 친구들과 3박 4일 제주 여행을 다녀왔으니 성공으로 친다. 템플스테이도 하고 싶었고 코타키나발루 예약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포기. 어쨌거나 선방했다고 봅니다! |
자산 총액 00 이상, 저축 00 이상, 투자수익률 5% 이상 달성하기 | 성공! 총액과 저축은 가뿐히 성공, 투자 수익률은.. 투자 수익률이 저정도가 아니라 추가 저축을 통해서 억지로 만들어냈다. 자산이 늘어날 수록 저축을 통해 그 비율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 투자 실력이 좀 늘어야 할텐데.. 할텐데.. |
1주일에 1개 이상 글 업로드하기 | 세모.. 양으로 따지면 성공이라 해야겠지만 아예 멈춘 시기가 있어 완전한 성공으로 보기 어렵다. 게다가 부연 설명으로 21.1월에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창작물을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딱히 내놓을 순 없거든. 2020년은 거창한 목표에 글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고 자평하)는데, 21년에는 좀 편안히 쓰고 싶다. |
체중 앞자리 바꾸기 | 실패! 실패로 쓰고 싶지 않았지만 2020년이 12일쯤 남은 지금 3kg를 빼야 하는 상황이기에.. 실패를 수긍하고 내년 1월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어쩌겠어, 연초에 운동하다 연중에 살을 찌웠고 다시 허겁지겁 빼서 연말이 되니 연초의 몸무게가 되었다. 내년에는 꼭 늘 헤메던 몸무게 언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숫자를 보기를..! |
하반기(10월) 10km 마라톤 뛰기 | 실패! 운동량으로도 10km를 쉬지 않고 뛰는 건 무리고, 코로나로 마라톤 행사도 열리지를 않는다. 2월 말까지 열심히 노력했는데 계속 피치를 올리지 못한게 많이 아쉽다. 내년에는 러닝머신 위에서라도 10km를 거뜬히 뛰고 싶다. |
미니멀리즘 실행하기 | 성공! 물건도 인맥도 마음도 많이 미니멀해졌다. 매사 단순하게, 간결하게, 군더더기없이. 내년에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할 예정. |
(업무) 남겨둘만한 업무 성과 만들기 | 세모.. 성과로 두 가지 상세 목표를 세웠는데 (Men 영상/가이드 완성, 새 교육 1개 이상 완성) 하나만 성공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내년에는 또 어떻게 일을 해야할 지 고민이 많다. |
(공부) 과학책 12권 이상, 회계 책 5권 이상 읽기 | 실패! 과학책.. 솔직하게 한 권 읽었읍니다. 어쩜 이렇게 편향된 인생을 살까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올해는 전체적으로 독서량이 매우 적었다. 뭐 그런 해도 있는 법이지. 너무 스스로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독서로는. |
돈 쓰기 원칙 :: 성공 2개, 실패 1개, 세모 1개 (성공률 62.5%)
원칙 | 성공 여부 및 코멘트 |
식당에서 2인 3메뉴 시키지 않기 | 실패! 데이트할 때 적용하려 했는데 끝내 실패했다. 내년에는 좀 더 강경하게 남자친구에게 말해보려고(우리 모두 다이어트를 해야하니까!). 다만 데이트할 때 비용 조절은 둘이 잘 협력해서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나쁘지 않지 뭐. |
텀블러 할인 상시 습관화 | (목표에서 제외) 자주 가는 회사 안 카페가 코로나로 텀블러를 아예 받아주지 않게 되었다. 이건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지.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내년에는 좀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코로나랑 텀블러가 큰 상관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
약속 최소화 | 성공! 이건 꼭 돈때문에 정한 원칙은 아니었다. 약속에 치이는 내가 괴로워서 넣었는데 인맥도 미니멀리즘으로 잘 정리해서 올해 약속은 내가 원하는 수준만 만들 수 있었다. 남은 사람들과 더 돈독해 진 건 말할 것도 없고. 만족한다. |
용돈 가계부 작성하기 | 성공! '똑똑가계부' 어플을 쓰다가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오로지 '용돈' 항목만 적었다. 훨씬 편하더라고. 덕분에 매달 얼마나 쓰는지 잘 지켜보고 조절도 쉽게 한다. 소비 금액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왔다갔다 하는 터라 내년에도 이 정도로 유지하려 한다. |
환전은 기준 환율을 충족했을 때 10만 원 이하로 | 세모.. 성급히 많이 주식을 매수하지 않기 위해 이런 목표를 세웠지만, 이렇게 할 일이 아니란 걸 1년의 공부를 통해 또 깨달았다. 매년 발전하니까 좋은 거겠지..? 어쨌거나 나름의 기준으로 환전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
작년보다 %가 좀 떨어졌다. 반성해라! 실패한 내용이 건강/운동과 관련한 것들이라 마음이 아프다. 내년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인간은 늘 새로운 다짐을 반복하지만 그 주기가 짧을 수록 인생이 더 열심열심해 지니까 문제가 없습니다. 내년의 나를 내가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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