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역대급으로 적은 용돈을 썼다. 소비를 줄이려는 마음과 코로나 거리두기가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송년 모임은커녕 일상적인 점심 약속도 줄어들어 대체 돈을 쓸 곳이 없었다. 참으려 애쓰지 않았는데 자연스레 줄은 덕에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기쁨이 충만하고 마음이 풍요로웠다. 그러다 문득 컨셉진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하나의 질문을 드립니다. 당신의 지금을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합니다.'
대학생때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20쪽가량의 과제로 제출한 적이 있었다. 몇 년에 한 번 그 과제를 읽어보곤 하는데, 그 시절 생각도 나고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잘 느껴져서 읽을 때마다 재밌다. 그런 과제와 비슷한 이 프로젝트를 12월에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지. 20대의 마무리로 시도해볼까 싶었지만 회사에서 자리를 옮기느라 분주해 결국 신청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한 번 눌러봤다고 이렇게 또 광고로 내보낼 일이야. 새 자리에 잘 정착했겠다, 돈도 넉넉하겠다, 순식간에 마음이 동해 후루룩 입금을 마쳤다. 40살의 내가 읽으면 좋아하겠거니 하며.
2월 한 달 간 매일 아침 8시에 질문을 받으면 그날 자정까지 950자 내외의 답변을 올려야 한다. 중학생 때 매일 네이버 블로그씨의 질문에 대답했던 기억도 떠오르는 게 상당히 설렜다. 질문은 재미있을까. 낮에는 쓸 시간이 없으니 퇴근하고 써야 하는데 내가 피곤을 잘 이겨내려나. 저녁에 컴퓨터를 켜는 행위부터가 나에게는 굉장한 도전인데. 생각은 뻗고 뻗어 너무 힘들어하셔서 노할멈이라 이름도 지어준 내 2016년생 노트북까지 닿았다. 이걸로 글을 쓸 수는 없어.
지금 노트북으로는 오타를 고치다 시간을 보낼게 뻔했다. 당장 컴퓨터를 사야겠어! 사실 컴퓨터를 사겠다는 생각은 몇 달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올 상반기에 돈을 모아 5월에 결제할 계획이었다. 후후. 계획은 변하라고 있는 거지요? 마침 연가보상비도 들어왔는데 굳이 그걸 저축하고 5월에 살 필요는 없지. 지금 사고 5월까지 저축을 하자. 생각은 되는 방향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버버버 결제를 끝냈다. 세상에, 호떡집에 불나는 속도로 새 컴퓨터를 사다니!
컴퓨터를 잘 아는 회사 동기에게 확인도 받았으니 컴퓨터의 품질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와주기만 한다면 어화둥둥 아껴줄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번주 내에 도착하겠지? 갑자기 돈을 팡팡 썼지만 마음 설레는 값으로 전혀 아깝지 않다. 새 컴퓨터와 함께 30대 초반의 기록을 잔뜩 남겨야겠어. 2021년의 시작이 아주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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