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Book Review]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 김주성

by 푸휴푸퓨 2021. 1. 29.
728x90
반응형

  북한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를 짚어주려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고민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기준은 뭘까.

  저자는 경상도 출신의 조부모님과 함께 일본에서 살다가 10대 시절 조부모님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교사도 하고 작가도 했다.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지만 200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에서 새터민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작가였던 이력을 살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과 한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버무려 신문에 칼럼을 썼다. 이 책은 그 칼럼을 엮어 만들었다. 



  이 책은 매 꼭지의 책을 미리 읽어봤거나 내용을 알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페이지를 넘겨 책 제목을 발견하면 '오, 이 책은 어떻게 읽었을까'하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니! 북한을 탈출해 선택한 국가를 떠나는 젊은이를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운좋게도 그가 읽은 책 중 여러 권을 나도 읽었다. 하지만 호기심도 잠시.

  북한의 체제 비판은 책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체제가 싫어 한국에 온 분인 데다 누구나 싫어할만한 억압이 있는 곳이니 이해는 충분히 간다. 다만 그렇다고 한국이 결점 없는 사회는 아닌데. 한국에 오니 24시간 내내 전기와 온수, 가스를 쓸 수 있어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언급되는데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이야기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강원래, 김송의 '우리 사랑 선이'를 읽고 북한의 장애인 대접을 떠올린다. 편견과 차별이 많다. 그런데 남한은 장애인을 위한 여러 복지가 잘 되어있다.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려는 한국 사람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음? 강한 의지? 이 사회의 모순을 뻔히 아는 나는 갸우뚱한다.

  아무리봐도 저자가 한국의 부조리를 전혀 못 보았을 리 없는데 도대체 왜 비판을 내용에 넣지 않았는지 점점 의아했다. 무조건적으로 북을 비판하고 남이 좋다는 이야기는 싫은데. 그래서 왜 그랬을지에 대해 -내가 굳이- 여러 고민을 해보았다.

  우선은 한국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란 생각이다. 남한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칼럼으로 쓰면 악플 세례가 쏟아지지 않을까. 북한 사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공개적으로 사회 구조와 정권 비판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지레짐작도 들고, 어쩌면 한국 사람에게 한국을 비판하다 싫은 눈길을 받은 경험을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저자가 필요로 했던 자유가 북한에서는 충족되지 못했지만 남한에서는 충족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만족한다면 굳이 그 이상을 꼬집어가며 싫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이 정도만으로 충분하다면 충분한 것이다. 

  자유란 체험해본 사람만이 그 진가를 안다. 하지만 자유의 기준을 쉽게 정할 수는 없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 자유의 기준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자유의 기준은 극히 소박하다. 보고 싶은 책을 쓰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세 번째는 저자가 지상낙원만을 기대하고 한국에 온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그는 북한으로 들어가기까지 일본에서 이미 자본주의를 경험했다. 하나원에서 나온 후 가장 먼저 맥도날드로 달려가거나 도라에몽을 보고 어린 시절 추억에 눈물이 나기도 한다. 아예 북한 태생의 사람과 달리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을 테니 기대하는 바도 달랐겠지. 그는 북유럽이나 캐나다로 탈한국을 하려던 이들을 보며 한국 바깥이라고 새로운 세계가 있지 않을 거란 이야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이런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북한에서 일반 사람은 여행을 다니지 않는다던지 장례를 소속된 조직(예를 들어 회사)에서 주관해준다던지 하는 생소한 문화를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 작가 본인도 언급하는 북한의 가부장적 문화도 눈에 띄었는데, 아내와 아이를 '거느리고' 간다는 표현이나 아내는 존댓말, 본인은 반말을 쓰는 대화체 등이 눈에 걸렸다. 저자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편집자가 굳이 걸러내지 않은게 아닐까 생각했지(어크로스가 하려고 들면 그 정도는 걸러낼 수 있는 출판사라고 믿는다). 작가가 방송에서 북한에 대해 논하는 내용을 미리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면 책에서 또 다른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어느 수업에서 탈북한 여학생이 자기 소개로 쓴 탈북 이야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처음으로 북한 체류 경험이 있는 작가의 글을 읽었다. 흥미로웠고, 덕분에 원하는 글을 읽고 원하는 글을 쓰는 자유가 소중함을 괜히 한 번 인식하게 됐다. 저도 한국에서 적당히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도 부디 가족과 행복하세요. 


  책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 작가의 인터뷰를 발견했다. 음, 어쩐지 나보다 한국 사회를 훨씬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이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읽었길 잘한 듯 싶다.

YES24 채널예스:: 북한 작가가 서점을 가는 이유 (ch.yes24.com/Article/View/40534)

 

북한 작가가 서점을 가는 이유 | YES24 채널예스

한국에 와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재단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도 존중한다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도 줄

ch.yes24.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