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의 마음을 흔드는 마케팅 코드 13'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읽는 목적은 한 가지다. 잘 정리된 다양한 마케팅 사례를 한 눈에 보는 것. 직접 찾아보기 귀찮으니 떠먹여달라는 심보다. 밀레니얼의 특징을 적당히 정리하고 몇몇 브랜드를 알게 되겠지. 모르는 사례가 많았으면 하는 간단한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시작부터 독특했다.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사례를 나열할 법 한데 저자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트렌디하다 자부할 법 한데 꼰대라서 따라가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자신이 부족했던 점이 드러날 거고, 그러니 밀레니얼이 읽고 있다면 이전 세대의 생각은 이러하다고 비교하며 읽어보면 좋겠단다. 솔직한 글을 보니 조금의 꼰대끼가 보여도 참고 읽어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했던 생각이나 내가 했던 행동이 이렇게 분류되어 파악되니 새롭게 재밌더라고. 일단 주요 마케팅 타깃인 '밀레니얼'이란 말조차 그렇다. 나는 내가 밀레니얼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늘 거리감을 둔다(90년대 초반생인 내게 밀레니얼은 90년대 후반생을 일컫는 말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묶음을 싫어하는 것조차 밀레니얼의 특징이래. 오, 나도 약간 밀레니얼이긴 한가?
최서윤 작가의 『불만의 품격』이란 책을 보면 요즘 애들이 젊다는 이유로 나 같은 세대에게 가르침을 당하고 'N포 세대' 등으로 규정되는 데 얼마나 염증을 느끼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왜 잘생긴 광고 모델이 나오는 CF에 큰 관심이 없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아한 모습으로 아파트의 품격을 외치는 TV광고보다 현실적인 방 인테리어 영상을 보면 훨씬 더 집을 사고 싶다고 느낀다. 아름다운 여자 배우가 궁전같은 집에 사는거 뭐. 나랑 무슨 상관이람.
내가 어떻게 쓰느냐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더 중요했던 시대. 그래서 그런지 각 브랜드마다 소비자들이 닮고 싶어하고 동경하는 모델들을 내세워 마케팅을 했다. 화장품 광고 모델로는 무조건 당대 톱으로 손꼽히는 따라갈 수 없는 미모의 배우들이 발탁됐다. (중략)
요즘 세대는 브랜드가 리드하는 대로 마냥 따라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브랜드가 소비자를 뒤따라다니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면밀히 관찰하고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럴 때 반응하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이유로 남들을 따라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저자 본인의 마케팅 사례도 종종 나온다. 책에서 본인의 커리어를 자랑하나 싶었지만 실패담도 적나라하게 나와서 반감을 거뒀다. 적절한 사례에 과하지 않은 비중으로 나오는데다 내부자의 시선도 알 수 있어 유용했다. 가령 저자가 피키캐스트의 '우주의 얕은 지식' 광고 기획자라는 사실은 아주 흥미로웠는데, 그에 대해 광고인의 마음이 어떤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피키캐스트의 헤비 유저였던 나도 딱 저 광고가 온 사방을 뒤덮을 쯤 피키캐스트를 지웠다. 이용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피키캐스트 에디터와의 유대감이 싹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피키캐스트가 '우주의 얕은 지식'이란 광고 후 100만 1,000만 다운로드라는 스코어를 기록한 뒤) '역시 대중적인 게 최고구나'하며 여유 부리고 있을 때쯤, 우연히 피키캐스트 앱의 뉴스 콘텐츠에 달린 댓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끼리만 보던 곳이었는데 광고가 너무 잘돼서 아무나 막 들어오게 됐잖아. 아, 보기 싫어졌다. 피키." (중략)
실제로 피키캐스트는 모두를 위한 브랜드를 지향하면서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그저 평범한 브랜드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히트 원더를 낸 가수처럼 말이다. 이때의 10대가 지금의 소비 주체인 밀레니얼 세대들이다.
이들은 확실히 이전 세대와 다르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면 이 옷이 트렌드고 유행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쪽팔려서 당장 갈아입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사람이고 싶은 게 요즘 애들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브랜드를 나도 갖고 싶어하던 우리 세대와는 정반대다. 자신이 소비하는 브랜드로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발현하는 셈이다.
책에는 왜 젊은이가 기업의 윤리를 소비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지, 왜 점점 대중적이기보다 매니아를 잡아야 하는지 등 마케팅에 유용할 기본 방향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렇게 열심히 탐구했으니 이제 저는 밀레니얼을 잘 압니다, 하며 밀레니얼을 단정하지 않고 끝까지 잘 모르겠다 말해서 좋았다. 나도 5살쯤 차이나는 동료 직원의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은데 아저씨가 한 번에 파악해버렸다고 하면 좀 섭섭하지. 게다가 밀레니얼 분석을 넘어 본인 세대와의 비교를 넣어준게 이 책의 아주 키 포인트다. 내가 밀레니얼처럼 생각한다면 왜 윗세대는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윗세대처럼 생각한다면 밀레니얼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됐다. 때로는 그 중간 어드메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가끔 그런 상사가 있다. 좀 옛날 사람이긴 한데 배울 게 많아서 옛날 방식 쯤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 오히려 그 세대를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트렌디의 최첨단을 못 달리면 어때. 서로 생각이 좀 다르면 어때. 그런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마케터에게도 세대 간 이해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요긴할 좋은 해설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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