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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Review]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by 푸휴푸퓨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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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과가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나면 쓸 수 있는 글의 표본이 아닐까 싶었던 이번 책. SF가 이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적은 처음이라 읽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그럴듯한 SF를 소재로 밀도 있는 핍진성을 보여주는데 실감 나게 현대의 문제를 짚어내면서도 감동까지 준다. 그 와중에 막막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거나 과학만능주의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아. 이 작가 뭐야! 천잰가!

  '광속불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책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도서관 예약 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예약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 놓은 글은 여기). 무려 10명을 기다리고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설을 읽지 않는 분석적 이과생이라고요? 오세요! SF는 싫어하는 문과 감수성 풍부한 문학인이라고요? 읽으세요!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분이라고요? 걱정 말고 펼쳐봐요! 술술 넘어갑니다! 아무튼 누구나 읽으셔도 된다 이겁니다! 영업하고 싶은 마음이 미칠 듯이 뻐렁쳐온다.

  사실 베스트셀러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나기에 첫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기 시작하면서는 그닥 우호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뭐야, 기계를 타고 이동한다고? 에라잇. 하지만 왜 돌아오지 않는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이 작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어서) SF적 소재를 가지고 분리주의와 행복에 대해 말하는 재밌는 소설이라니! 저자의 말에서 작가는 과연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빠졌다고 했다.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정말 좋은 답이었고. '스펙트럼'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외계인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과 이렇게나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정말이지 강렬했다. '공생가설'은 또 어떻고. 우리가 인간성이라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다면? 와우, 그렇다면 또 어린이가 왜 이렇게 나와는 다른 인류 같은 기분이 드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우주에서 더 커져만 가는 외로움을 간직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심지어 그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기술이 아니라 자본의 이유라는 점이 킬링 포인트다), 우울을 손 위에 두기를 원한다는 '감정의 물성'도 재미있었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내가 요즘 한층 가까이에 다가온 것만 같은 우주여행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줬다. 우주 그거 굳이 꼭 봐야 하나?

  사서라는 직업을 가진 내게 도서관의 의미와 사회 속에서 단절된 개인을 이야기한 '관내분실'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단은 새로운 의미의 도서관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결국 사서는 데이터를 관리하는 DB관리인이 되는 그런 것이겠죠. 미래에나 지금이나 과거에나 도서관에서는 서지사항이 없으면 검색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있으면서도 없는 상태를 도서관 속 자료와 사회 속 개인으로 나란히 두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발상이 너무나 멋졌다. 진짜 대단하다니까! 근데 그 와중에, 당신을 이해한다는 멘트까지. 작가님 제발 절 가져요!

  아, 이 단편들 중 내 최애는 무엇이었다고 해야 할까. 하나만 꼽기는 어려워서 TOP3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관내분실'을 말해본다. SF라면 으레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없는 세계라 참으로 좋았고, 이에 더해 작가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태도가 전해져 와서 더욱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참나. 작가님 세계도 쫌 아름답네요. 이제 나는 김초엽 작가의 차기작을 오매불망 기다리겠다. 흐허, 이런 감정 정말 오래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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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에 올랐는데 찾지를 못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기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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