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지만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던 단어 '단사리(斷捨離)'. 일본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부르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그 말을 직접 퍼뜨린 이의 책을 읽게 되었다. 미니멀에 관련된 책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하는 순간은 여전히 기쁘다. 기억해둘 만한 단상이 몇몇 있었다.
지금 우리는 물건을 스스로 골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제멋대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물건이 쌓인다. 호의로 사주신 커피 한 잔에는 일회용 커피컵과 빨대가 따라온다. 가루커피를 다 먹고 나니 단단한 유리병이 남는다. 한 번 써보시라며 칫솔세트를 받았다. 택배에 따라온 뽁뽁이는 몇 달째 새것처럼 서랍에 잠들어 있다. 모두 다 내가 쓸 일은 없다. 버릴 수도 없다.
질이 좋은 물건은 잘 처분하는데, 왜 질이 좋지 않은 물건에는 미련을 갖는 것일까? 잠재의식 속에 '가격이 비싸거나 품질이 좋은 물건은 편하게 사용하기 힘들어. 내겐 싼 물건이 어울려'라는 생각이 가득해 자기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비싸게 모셔두는 것과 막 쓰기 좋은 것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다이소에 발길을 끊은 내 모습을 반추했다. 생각해보면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지 않게 된 건, 그저 그런 다이소 물건 여러 개보다 더 좋은 리빙샵 물건 한 개를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어서다(다이소의 많은 물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이소 물건을 써서 행복한 적이 있느냐 자문해보면 딱히 없다. 다이소가 어울린다 생각하고 살고 싶진 않기에, 앞으로도 다이소는 멀리해야겠다.
단사리를 실천하다 보면 자신이 스스로에게 어떤 물건을 줄지에 대해 불쾌할 정도로 객관화시키는 순간이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자신은 어떻게 되고 싶은지 의식하게 될 때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에 상응한 물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건을 줄일 때에는 제일 좋은 것만 남기면 됐다. 하지만 비우고 나니 무엇을 채워야 할 지 알 수 없었는데, 옷이나 가방 스타일을 정해야 하는 게 그랬다. 명품 가방을 하나쯤 사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딱히 들고 다닐 것 같지 않았다. 유행하는 디자인은 당장은 갖고 싶지만 다음 시즌엔 싫어진다는 걸 잘 알았다. 한철 쓰고 버릴 물건을 사긴 싫었다.
비일상이 아닌 일상에 중심을 둔다.
그래서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을 스타일을 추구하기로 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유심히 보면 엄선된 물건을 쓰는 사람"에 방점을 뒀다. 기본에 충실하되 과하지 않은 브랜드를 공들여 찾았다. 디자인은 평범한데 감촉이 좋은 옷. 무난한 에코백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바로 말할 수 있는 가방. 늘 사던 옷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괜찮았다. 소비의 총액은 줄었기 때문이다.
'양*장소*기간'
짐을 줄이려면 이사를 한 번씩 해야한다고 말하는 어른이 많다(우리 엄마가 그렇다).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유도 모르게 짐이 증식된다. 처음 말한 것처럼 물건이 제멋대로 집에 들어오기 때문일 테다. 이사 갈 일이 없으면 어때. 이사한다는 마음으로 치우기만 하면 된다. 주기적으로 엄마의 짐을 뒤엎는다. 싫기만 하신 줄 알았는데, 어제는 내심 기다리고 있으셨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겐 이사 대신 딸의 돌풍이 있다.
물건을 줄여가는 작업은 최종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고 취급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물건의 차원에서 처음 나타나게 되므로 물건과의 관계를 더 좋게 만들어간다면 모든 것이 변화하게 된다.
고르고 골라 아끼는 물건만 남는다. 좋은 물건을 소중하게 쓴다. 늘 귀한 물건을 쓰는 나도 귀한 사람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사람, 단정하고 여유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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