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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서른] 23. 지금까지 봐온 장면 중 가장 '낭만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by 푸휴푸퓨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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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의 요지에 꼭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인생에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은 생생히 기억해요. 24살의 전 부모님의 도움 덕에 뉴욕에 한 달간 여행을 갔어요. 번쩍거리는 화려한 것들을 보다가, 조용히 박물관을 떠돌다가, 길에 누운 노숙자나 쓰레기 수집가를 보기도 했어요. 자본주의는 참 매력적이면서도 무서운 것이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허드슨 강을 넘어 저지시티에 놀러 갔어요. 적당히 칵테일을 마시고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페리를 탔는데요, 평범한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탑승객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신나게 페리 2층으로 올라가 좋아하던 노래를 크게 틀었어요.

  Paloma FaithNew York이란 노래는 낮이 길고 밤이 추웠다는 말로 이별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는 다른 여자에게 가기 위해 나를 떠났다고요. 어느 날 내 손을 잡고는 떠나버리겠다는 남자의 말을 믿지 못했다고 Paloma가 절규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말하죠. 그녀의 이름은 뉴욕이었다고. She has poisoned his sweet mind. 독에 물든 듯 뉴욕에 빠져들어버렸다고요.

  이 말이 정말 딱 맞았어요. 야경이 끝내주는 맨해튼을 강 위에서 적당히 취해 바라보는데 정말이지 맨해튼이 저를 독에 취한 듯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가둬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말 그대로 온 몸이 짜릿짜릿했습니다. 노래를 몇 번 반복해 들으며 Her name was New York-을 외쳤어요. 뉴욕아! 저 먼 조그만 나라에서 온 내가 있다! 하는 심정으로요.

  정말 마약에 취한 듯 반짝이는 맨해튼에 취한 날이었어요. 살면서 이만큼 강렬한 순간이 또 올까요. 제게 24살의 뉴욕은 페리에서 느꼈던 그 짜릿함으로 남아있어요. 삶에서 가장 영화같은 몇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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