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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MINIMAL LIFE

내가 만족하는 미니멀라이프 실천 3 - 애착 물건 비워내기

by 푸휴푸퓨 2021.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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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적으로 방을 솎아준다. 정리할 물건은 많지 않다. 써서 비워야 할 물건과 비우지 않으리라 결심한 물건이 섞여있다. 그럼에도 계속 봐야 하는 건, 비우지 않을 것이 비울 것으로 옮아가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물건에서 애착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첫 취직 후 월급을 받게 되니 스타일리시한 쇼핑몰에서 옷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내게 W컨셉이나 29cm는 힙스터(!)가 쓰는 쇼핑몰이었다. 나도 이런 데서 사보자! 마음은 웅장한데 지갑은 얄팍해서 세일 상품만을 뒤졌다. 원래는 3만 원대였던 반팔 티를 만 원대에, 기모 후드를 2만 얼마쯤 주고 샀다(어째서 두 옷이 같은 계절에 사고 싶었는지는 따지지 않기로 한다). 나는 이제 3만 원도 넘는 티셔츠를 사는 사람이야! 자부심과는 달리 값비싼 목록 속 세일 상품 사냥이 힘겨워 나는 두 쇼핑몰을 다시 쓰지 않았다.

  사냥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두 옷 모두 품질이 좋았다. 반팔 티는 운동하며 입었는데, 잠옷 같은 티셔츠나 찜질복 같은 헬스장 운동복과는 달리 당당하게 입을 수 있었다. 운동복으로 산 건 아니지만 뭐 어때. 4년쯤 마르고 닳도록 입었으니 그 값은 충분히 했다. 땀에 절고 세탁에 상한 옷은 이제 영 색이 바랜 옷이 되어버렸다. 바래다 못해 솔기가 헤어지고 바느질 부분에 구멍이 났다.

  어떻게 샀는지 생생히 기억나서 버리기 아까운 옷을 붙잡고 한 달을 보냈다. 쓰레기통에 버릴 순 없는데. 그러다가 제로웨이스트카페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면티를 버릴 때가 되면 조각조각 잘라서 프라이팬 기름을 흡수시키거나 청소용으로 사용한 뒤 버린다는 거야. 셔츠를 서걱서걱 자르고 늘 좋아했던 가슴팍의 Satellite 자수를 보관해두었다. 어디엔가 다시 붙일 수 있겠지. 자르자마자 하나를 사용해 가구의 -몹시 매우- 묵은 때를 벗겼다. 이 옷은 내 방에서 천천히 나가게 되겠구나. 그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SATELLITE !

  그런가하면 새 물건을 구입하면서 헌 물건에 애착이 사라지기도 하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오일파스텔을 샀다. 학원을 다녀봤는데도 마음에 들더라고. 이렇게 좋으면 사야 해서 샀다. 사고 보니 마음에 들게 놓아둘 곳이 마땅찮았다. 쌓아두고 싶지 않은데 빈칸이 없네. 문득 잘 열어보진 않지만 차마 버릴 순 없다고 닫아둔 추억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 인생에서 소중한 종이는 다 모아둔 상자였다. 언니와의 첫 유럽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평생에 걸쳐 찍은 증명사진과 수능 수험표, 학년별로 부모님이 써주셨던 편지, 1999년에 말 안들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써준 언니의 편지, 중학생 때 처음 좋아했던 남학생이 써준 편지, 유학을 떠난 친구의 푸념, 첫 회사를 다니며 썼던 일기장, 혼자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채워오던 메모 노트...

  정리할 게 없어 보였던 상자가 달리 보였다. 서른이나 된 내게 수능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 수험 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난지는 한참 지났다. 첫 회사에서의 풍파를 뼈에 새겨 이를 갈려고 했는데 다시 보니 굳이 부정적인 감정을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중학교 때의 남학생은 결혼했다는 풍문을 들었고, 여행 메모는 돌아보니 '뭘 샀다' 혹은 '뭘 먹었다'는 말 뿐이었다. 절반쯤을 버려내고 나머지는 서랍에 넣었다. 상자도 일본 리빙샵에서 고르고 골라 산 것이었는데. 살 때는 참 즐거웠다.

  가구는 옷장이나 책장, 서랍장처럼 물건을 수납하기 위한 용도의 '수납가구'와 의자, 테이블, 책상, 침대와 같이 사람의 몸이 닿으며 휴식을 하거나 작업을 할 때 쓰는 '신체가구'로 크게 나뉜다. (중략) 타고난 골격은 어쩔 수가 없듯이 이미 지어진 집은 벽체를 옮기거나 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 대신 사람이 운동으로 몸의 지방을 없애고 근육을 늘려 몸매를 가꾸듯, 공간은 수납가구를 줄이고 신체가구를 적재적소에 두는 것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인테리어의 기본이다.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 - 서윤

 

  책장 한 칸을 비워내고 넉넉히 미술 도구를 넣었다. 학원에 가면서 가볍게 꺼내들고 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휴식 시간이면 나는 침대와 책상에서 절반씩의 시간을 보낸다. 바닥에 벌렁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기도 한다. 작은 방 안에서도 수납공간은 점점 줄고 신체 공간은 늘어난다. 가만히 숨죽였던 저 책장 한 칸도 앞으로 나와 함께 정기적으로 살아날 테다.

오일파스텔, 스케치북, 색연필 - 아끼는 취미 한 칸

  그냥 내보내기 아까운 물건은 새로운 쓰임으로 내보낸다. 감정이 묻어있는 물건은 감정의 변화를 인정한다. 물건이 사라지면 기억이 옅어진다. 아끼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지 말자.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춰 숨 쉴 때 우린 더 가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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