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나 브런치에서 미니멀라이프, 제로웨이스트를 검색하며 다른 사람의 실천을 구경한다. 영감도 얻고 공감을 할 때도 많아 비슷한 내용을 보는 게 지겹지 않다. 보다 보면 점점 살림꾼의 집안을 구경하는 수준이 되는데, 정갈한 타인의 살림을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재밌다. 하지만 그게 미니멀라이프인지 의아할 때도 많다.
어릴적 한비야 작가를 좋아했다(2015년 이 글에서 고마움의 대상은 한비야였다). 그의 책에서 흔한 볼펜도 오지 여행을 가면 딱 한 자루이기 때문에 굉장히 아끼게 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껴 쓴다는 구절을 읽었다. 여행을 마친 뒤 돌아간 집을 선방처럼 해두고 산다거나 삶에 필요한 건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초등학생은 샤프를 한 자루 정해 중학생이 되어 망가지는 날까지 몇 년을 썼다. 대학생 시절 한 달간 여행을 다닐 때도 딱 한 자루의 펜을 들고 다녔는데,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펜 하나를 사는 돈도 아까운 가난한 여행자는) 아껴가며 끝까지 썼다. 한비야처럼 오지여행은 못 다녀도 펜 한 자루 여행은 하고 있구나 하며.
한비야는 자신의 삶에 미니멀라이프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땐 그런 말이 없었지. 그래도 누구보다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반면 멋들어진 유튜버는 쉽게 미니멀라이프를 소개한다. 나무 접시와 소창 행주, 새로 산 스테인리스 칫솔걸이는 물론 프로듀스백이나 실리콘 뚜껑은 사이즈별로 필요하다. 글쎄, 그런 것 없이도 잘 사는데. 나는 이미 가진 지퍼백을 마르고 닳도록 쓰고 있지만 저이는 너덜한 봉투가 예쁘지 않으니 빛깔 고운 프로듀스백을 샀을 테다. 제로웨이스트도 마찬가지다. 친환경을 위해 설거지 비누 받침대를 대나무로 바꿨단다. 그럼 전에 쓰던 실리콘 받침대는 어떻게 했나요? 행방은 모르겠고 그냥 화면에서 사라졌다. 아마 버려졌을 것이다.
미니멀에 관심을 가질 수록 미니멀라이프란 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진정한 미니멀은 그 말을 모르는 이의 담백한 태도에 더 어울린다. 알면서도 나는 미니멀라이프 제목을 달고 그럴듯한 게시물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화면에 잡히는 예쁜 구도가 없었다. 어쩌겠어.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책상, 중학생 때부터 쓰던 침대, 고등학생 때부터 쓰던 옷장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인테리어 감성을 완성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내 미니멀라이프의 목적을 다시 짚는다. 유튜버의 보기 좋은 미니멀 인테리어? 선방 같은 단순한 환경? 묻지 않아도 후자임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내 안에 싹튼 아쉬움을 잠재운다. 갖춰두면 행복하지 않으리라 나를 다독이면서. 왜 또 멋져 '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었는지 내게 물어보면서(그거슨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싶은 월급쟁이의 콘텐츠 욕심이렷다).
가끔 타인이 부러러워도 종종 지금이 의문스러워도 결국 나의 방식을 따른다. 테트라팩 수거에 반가워하며 두유 팩을 씻어 너절하게 얹어둔 책상이 내 방식의 미니멀라이프다. 그냥 나의 라이프라 불러도 상관없겠다. 뭐가 어쨌건 나는 내 길을 간다. 이쪽이 본질에 집중하는 방향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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