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났다. 고작 한 달 간의 여행, 끝이 금방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끝나고 나니 아쉽다. 지난번에도 그랬듯, 몹시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더 행복했던 한 달이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많이 성장했다. 매일 일기를 썼다. 여전히 어리고 속좁은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샌가 훌쩍 커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착실한 한 권의 일기장이 언제까지나 22살의 나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것이다. 훗날 이것을 보고 어찌 판단할지 궁금하다. 나이에 맞게 잘 크고 있나요? 편협한 생각들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어 타인이 본다면 창피하기 그지 없을 일기다. 하하하. 쓰면서 즐거웠다.
2년 전 여행을 다녀오면서는 집에 너무나 오고 싶었다. 무더운 날씨, 동양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몇 명의 눈초리, 소매치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집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슬픔... 무엇보다 집이 너무 그리워서, 고작 20일을 여행한 주제에 마치 엄청난 일을 하고 돌아오는 마냥 한국으로 들어오늘 발걸음이 설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여전히, 집을 사랑하는 막내니까.
집에 오고 싶지 않았다. 이 행복한 여행이 더 이어졌으면 했다. 집에 돌아가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서 도피하고 싶어 그러는 건가, 라고도 생각해 보았지만 맞지 않았다. 나이가 차고 있으니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 그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집만이 나를 보호해 줄 울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어느새 부모님을 좀 보호해 드려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부모님 뒤에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앞장서서 내 삶을 지휘할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때만큼 세상이 겁나지 않았다. 어떻게 살게 되든 이 세상에서 나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
이런 내 모습에서 부모님은 실망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집에 오자마자 "저 어학연수 가고 싶어요"란 말을 던지는 딸이 좋아 보이실 리 없겠지. 하지만 영국에서 기어이 드러난 나의 허접한(허접하다는 표현 외에는 묘사할 말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영어 실력에 대한 불안감과 혼자 살아보며 더 많이 성장해야겠다는 조급함이 몰아쳐 어쩔 수 없었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어학연수라니, 부모님께 죄송한 부분이 많다. 금전적인 면에서 전적으로 기댈 수 밖에 없는 것보다, 엄마와 약속한 2학기의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의 마음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이 이기적인 자식을 용서하지 마세요, 엄마. 그렇게 많이 퍼주시고 계신데 여전히 나는 내 생각만 한다. 너무 미안한데, 그 마음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어떡하지?
일단은 다음주 월요일에 영어 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받으러 간다. 사실 집에 오니까 좋다. 편안하고, 쉴 수 있다. 그래.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아야지. 나는 1달간의 짱짱한 충전을 마치고 왔고 이제, 또 달려야 할 때가 왔다.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 지갑 속의 메시지는 항상 나를 미치게 한다. 다시,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달릴 것이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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