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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11.5. 새로운 길에 올라 헤메고 싶다

by 푸휴푸퓨 202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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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부서에서 일한 지 벌써 11개월 차가 되었다. 올해의 실장님은 사학을 전공한 학구파다. 책상에는 늘 온갖 책이 몇 겹으로 쌓여있다. 애서가로서 애서가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지만, 가끔 내게 학문을 권유하실 땐 당혹스럽다. 인사발령이 났던 첫 주에 실장님은 대학원을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셨다. 글쎄요. 일하면서 공부할 자신이 없어요. 여름에도 한 번쯤 물어보셨고, 지난달에도 그랬다. 점점 솔직히 대답했다. 현재 더 배우고 싶은 세부 전공이 없는 데다 대학원에 간 동기 모두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또, 이번 주에 대학원 이야기가 나왔다.

  늘 그렇듯 거부의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모교 연구소의 온라인 세미나를 들어보라는 답이 나왔다. 무슨 세미나지? 찾아보니 지금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다. 대학 시절 거리감을 느꼈던 교수님이 기조연설을 한다. 반차를 쓰느라 실시간으로 듣지는 못했는데, 유튜브에 곧 올라오겠거니 하며 작년 세미나 영상을 틀었다. 헉. 그 시절 교수님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영상에 등장했다. 헤어스타일, 표정, 안경, 옷차림 모두 똑같았다.

  외양이 늙지 않는 건 긍정적인 일이지만 세월의 깊이가 드러났으면 좋을 법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함없는 교수님의 모습은 변하지 못하는 대학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대학원 수업이 현직에 유용하게 적용될 것 같지도 않고 박사까지 파고들어 책상 앞의 학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공부를 꼭 대학원에서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실장님께 질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속적으로 권유받는 대학원 말고 요즈음의 내가 흥분하는 공부 콘텐츠는 마인드마이너(Mind Miner) 송길영의 이야기다. 20학번이었다면 데이터마이닝을 업으로 삼아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SNS의 빅데이터 분석으로 몇 년 후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AI가 사람을 대체할 세상에서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맞고. 최근 신작 <그냥 하지 말라>를 발간한 터라 다양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는데, 여러 영상을 찾아보며 그가 하는 말을 흡수했다(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뾰족한 질문에 새로운 답을 들을 수 있었던 신사임당 채널에서의 대화. 1부도 좋지만 2부는 더 좋다).

  송길영을 초대한 채널 주인 중 몇몇이 송길영과 시리즈 강의를 해보고 싶어했는데, 그중 삼프로TV의 미래대학이 드디어 12강짜리 강의를 내놓았다. 그런데 가격이 무려 -할인해서- 345,000원. 17,000원짜리 실물 책도 살까 말까 고민하며 들었다 놓은 나인데 35만 원이라니! 세상의 물가에 화들짝 놀라며 차마 결제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대학원 학비보다 훨씬 싼 금액인데 이쯤은 지출해도 되지 않을까 고심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3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에 당첨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이건 무슨 운명의 장난이지. 얼른 송길영의 책을 사라는 신호로 알고 점심시간에 바로 교보문고로 갔다. 사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울 지경. 문장 하나에 생각 하나를 더하며 꼭꼭 씹어 읽었다. 우리는 혼자 오래 사는 데다 사회는 당신이 꼭 필요하지 않답니다.

현실에 멘토가 없으면 온라인에서 직접 찾으면 된다

  이렇게 책때문에 설레기는 얼마만인가. 생각해보니 2018년 겨울 처음으로 미국 배당주를 공부할 때 기분이 이랬다. 미국 주식을 알고 난 후 (금전적 이득도 좋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져서 기뻤다. 가만히 있으면 날씨의 변화는 느껴도 사회의 변화는 느끼기 어려운 직장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세상이 필요하면 스스로 찾아다니며 헤매는 수밖에 없지. 3년 만에 다시 헤매기 시작했는데, 이번의 개안(開眼)은 또 어떤 세상으로 나를 이끌지 두렵고 궁금하다.

  돈이 더 많았다면 보다 쉽게 35만원을 투자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30살은 스스로에게 투자해야 할 나이인 건 아는데, PT에 겨울옷까지 결제한 직후라 마음이 가볍지 않다. 11월 28일까지 할인해준다니 3주간 올라오는 리뷰를 봐야지. 어디서 공부하건 눈을 크게 뜨고 살고 싶다. 열심히 생각하면서.

 

이쯤되면 공부하라는 운명적인 지원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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