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주는 법을 몰랐다. 막내는 양보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다. 양보하려면 일단 손에 쥐어야 하는데, 대개의 막내는 손위 형제에 비해 힘이 세지도 민첩하지도 않다. 그래도 나의 언니는 착한 어린이어서 꽤나 동생과 잘 나눴다. 덕분에 나눠준 것을 받기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꼭 막내여서 주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니다. 애초에 남에게 별 관심이 없어 선물을 주는 일을 귀찮아했다. '안 주고 안 받기'가 제일 편했다. 무엇을 줄지 고민하기도 귀찮고 예상치 못한 지출도 싫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직접 고른 만 못한 것을 받기도 애매했다. 각자 원하는 걸 직접 사면 안 돼? 선물을 받을 이에게 직설적으로 갖고 싶은 것을 물었다. 설렘은 없지만 실용은 가득했다. 사실 지금도 이 방식을 선호한다.
어떻게 주는 기쁨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을 처음 떠올렸던 순간은 기억한다. 고등학생 때 지하에 있던 매점을 가기 귀찮아했던 나는 3년 내내 매점을 간 횟수가 손에 꼽았다. 그럼에도 자주 먹을 게 풍족했던 이유는 친구들이 자주 내게 나눠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먼저 달라하지 않았는데. 과자를 보고 뛰어가 '하나만!!'을 외치기도 귀찮아하던 사춘기였다. 그런 내게 왜 과자가 오는지 의아할 때가 있었다. 먼저 달라하지 않는 흔치 않은 모습이 과자 주인을 자극하나.
고2의 어느 날에는 유난히 간식이 많았다. 다섯 가지쯤 되었더랬다. 옆의 친구에게 뭐든 골라 먹으라 했다. 걔가 날 보며 웃었다. 너 아주 잘났다고. 그제야 먼저 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갚지 않아도 되리라 가볍게 생각한 게 틀렸음을 알았다. 과자를 갚기를 기다려서 준 게 아니라 대가 없이 친절한 마음을 주었던 건데, 내가 오만해 빠져서 그걸 못 봤네.
10대와 20대를 지나고 보니 독하게 마음먹어 일궈낸 성취보다 작은 관심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내가 주는 게 힘든 만큼 남도 쉽지 않다는 사실과 Give and Take라지만 Take를 꼭 고려하는 사람만 있지 않다는 점도 알았다. 그런 사람이 특히나 소중하다는 것도.
많은 사람이 많은 것을 나눠준다. 요번주는 유난히 더 그랬다. 맛있다고 이야기만 들었던 그래놀라, 주말에 구운 빵, 신경 써서 챙겨 온 화장품, 지나가는 말을 기억했다 갖다 주는 향초. 종종 내 주변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지 않았는데 늘 간식이 풍족했던 고등학생 때도 눈을 흐리게 뜨고 출퇴근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기쁨이 좋다. 그 기쁨을 먼저 주기엔 내 그릇이 영 작다. 최소한 많이 돌려줄 수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어질 테고. 다 같이 행복하겠지. 가을이 순식간에 오더니 비로 다 떨어져버리는 이번 주에, 허탈함보다는 가득 찬 마음이 들어서 잔잔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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