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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11.23. 억텐 노노 억촉 노노

by 푸휴푸퓨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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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올린다. 불현듯 떠올라 한 시간 안에 올리는 주도 있고 며칠을 생각해 정리하는 주도 있다. 쓸 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어디서건 교훈을 찾아보려 애쓰는 주가 가장 힘들다. 이번 주처럼.

  늘 촉수가 발동하는 사람이 좋지만 억지로 촉을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전체를 관통하는 교훈 따위 없이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나 정리한다는 그런 이야기. 쓰다 보니 어투가 묘하게 옛날 사람 같네.

쉑쉑에선 힙스터 산책할땐 아저씨인 너와 함께 (맛있고 배부르고 비싸다는 평)

1.

  마크 테토의 '일보일경'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내 마음이 굳이 감응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 말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계획이 아니라 대응하는 삶'이란 말이 어불성설이라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게 맞다는 방향으로 마음이 돌았다. 여름쯤 언급했던 이동진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도 같은 맥락이고. 마음이 휘몰아치니 이제까지의 것들이 다 그런 뜻이었나, 하며 혼자 맥락을 찾으려는 게 아무래도 맥락병에 걸린 듯하다. 아무튼 이렇게나 빨리 변하는 사회에 제가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운들 썩 효과가 있겠나 싶다는 말입니다요. 단단할수록 세게 부러질 뿐.

 

2.

  그리하여 나는 계획을 세우는 대신 불안을 잠재우는 법을 깨우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예측이 안 되는 건 두려운 사람이 예측이 안되어서 재밌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겁먹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방법은 어떻게 깨우칠 거냐고요? 고루한 옛날 사람답게 뭐든 배우려면 일단 책을 찾는 스타일인데 아직 딱 맞는 책을 못 찾았다. 내 수호천사가 찾고 있는 중이시겠지.

나는 또 상상한다.
나의 수호천사가 세상의 모든 책들을 미리 읽어 놓고
나의 오만과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여 내 발치에 그때그때 적절한 책들을 떨어뜨려준다고.

마치 혀가 없는 것처럼, 심보선

 

3.

  아직 11월인데도 연말을 마무리할 글을 구상한다. 구상을 시작하려다가도 아직 12월과 11월이 한참 남았음을 생각하며 나를 막는다. 결국 애매하게 마음이 떠서 2021년과 2022년 사이 어디쯤에 부유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구상도 없고 12분의 1이라는 제법 긴 시간도 하릴없이 낭비하는 꼴이다. 인생 좀 낭비한다고 큰 문제는 없지만 또 24시간은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고. 갈팡질팡하며 얼레벌레 시간을 보낸다. 얼레벌레 살아도 제법 소소한 재미가 있긴 한데. 일단 얼레벌레는 어감부터 좋으니까(얼레벌레 에베베베 브부베붸 브뷉브뷉).

 

4.

  얼마 전 높은 상사와 밥을 먹었다. 괴로움까지 참아가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실이 어떤지 묻길래 솔직하게 아주 좋아한다고 답했다. 어떻게 답하든 어르신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요 실장님 귀에도 빠르든 늦든 들어갈 것이니. 좋은 분은 좋다고 말하는 게 최선이고 인생사는 될 대로 돼라. 촘촘히 애쓰지 않고 내버려 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회생활을 한 지난 몇 년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아래는 몇 달 전 회사 생활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하다 정리한 내용.

회사는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돈을 주지 않는다.
내가 보내는 시간 때문에 돈을 준다.

회사에서는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가부 여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불가능함을 알면 뒤돌아보지 않고 놓으면 된다.

 

5. 

  아빠 환갑 파티를 했다. 마침 사위도 서울에서 결혼식이 있어 함께 축하할 수 있었다. 보안을 지키려다 하마터면 아빠 없는 아빠 파티를 할뻔했다. 어쨌거나 순조롭게 사진을 찍고 맛있는 흑임자 떡케이크를 먹었다. 요즘 아빠는 내가 추천한 송길영의 '그냥 하지 말라'를 성실하게 읽고 있다. 아빠가 2022년에는 인생 첫 청춘을 맞이했으면 한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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