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2.8.22. 부유하는 사람이자 부유한 사람은 아닌

by 푸휴푸퓨 2022. 8. 22.
728x90
반응형

1.

  영화 '헌트'를 봤다. 연기도 좋고 내용도 좋은 잘 만든 영화였다. 표 값이 아깝지 않았다. 근래에 표 값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자주 나온다. 코시국이 한창일 땐 볼 영화가 정말 없었다. 영화계 이곳저곳에서 개봉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모양이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인터뷰를 여럿 찾아보고 영화를 봤다. 두 배우가 함께 나오는 씬을 보면서 영화도 좋지만 절친한 친구와 좋았던 한 시절을 좋은 이야기로 엮어 기록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배우는 멋진 직업이구나. 나는 직업으로 나를 추억하려면 책에 찍었던 도장 정도나 찾아봐야 하는데. 80살쯤 된 정우성과 이정재가 이 영화를 보면 흐뭇할듯하여 내가 미리 대신 흐뭇했다. 영화 안에서도 밖에서도 마음에 드는 그런 영화.

 

2.

  민음사에서 출간된 임선우 작가의 '유령의 마음으로'를 읽었다. 작가의 말에 정기현 편집자의 이름이 있어 흠칫 놀랐다. 유튜브에서 보던 사람이 언급되어 있군! 정기현 편집자와도 잘 어울리는 책인듯 해 기분이 좋았다.

  '유령의 마음으로'에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매 에피소드마다 버무려져 있다. 판타지를 힘껏 즐기는 편은 아니라 껄끄러울 법도 한데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하였다. 생경한데 따뜻해서 읽기를 잘했다고 느꼈다. 작가 소개를 보니 95년생이란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멋진 소설을 쓰면 마음이 질투로 차오른다. 95년생이면 20대 중반도 넘었지. 그 정도면 재능도 시간도 담뿍 쌓일 수 있는 연령이니, 남에게 들키기 전에 허겁지겁 꼰대의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다. 나보다 어려도 충분히 멋진 성인일 수 있지. 그러니 나도 허투루 나이만 먹지는 말아야 한다.

  훌륭한 재능과 인간적인 시선에 마음이 홀려 별 생각을 다 했다. 여하간 좋다는 뜻이다.

 

3.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어제 막 첫 권 '블랙 에코'를 다 읽은 참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영국 탐정이나 일본의 코지 미스터리 계열을 좋아해서 미국 형사 소설은 거의 읽은 게 없다. 어디서 추천글을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책을 찾아보았고, 예상보다 두꺼웠지만 일단 읽어봤는데, 다 읽으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자연스럽게 영상화된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것도 나름 읽는 맛이 있네. 드라마를 글로 배우는 느낌이었다.

  미국 형사 소설에 약간 관심을 기울이니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도 재밌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두 시리즈를 다 읽으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는데, 새로운 장르에 눈꺼풀이 뜨일랑 말랑하고 있다. 재밌다.

 

4.

  가끔 왜 이렇게 꾸준히 남자친구가 좋은지 의아할 때가 있다. 만나면 머리카락을 팔뚝을 배를 나도 모르게 - 아니 사실은 알면서 - 만지작거리고 있다. 흰머리가 잔뜩 나고 소화 능력이 떨어져 슬프다는 너를 나는 왜 변함없이 좋아하는가. 너는 또 왜 나를 왜 변함없이 좋아하는가.

  너가 너무 달달해서 언제 태도가 변할지 두려워하던 때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너의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맛있는 음식의 첫 입을 내게 준다. 카페에서 음료가 나오면 얼른 가져다준다. 주문하기를 싫어하는 나를 대신에 언제나 입을 뗀다. 바깥에선 어른인데 내 앞에선 한없이 어린 목소리를 낸다. 그냥 하고 싶은 일에 이유를 묻지 않고 함께해준다. 내가 싫어하는 나도 좋아한다. 쓰다 보니 남이 보면 가관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입에서 나오면 멀리 떨어지고 싶을 말을 나는 진심으로 줄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나도 의아하다. 5년째 왜 이러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문득문득 생각한다.

  세상만사의 이유를 전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생각과 질문이 끝에 닿을 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가 어물쩍 넘어가는 가장 큰 상념이 바로 너다. 오늘도 가관인 채로 적당히 넘어간다. 혹시 또 아나. 다음 주에는 애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지도 모르지.

 

5.

  여전히 티끌모아 태산을 만든다. 태산(太山)은 커녕 소산(小山)도 아직이지만 그래도 모래 알갱이는 모았다. 연초에 생각해본 쉬운 목표는 달성하련만 어려운 목표는 역시나 어렵겠다.  조급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고 그렇다. 늘 걷는 속도대로 뚜벅뚜벅 걷는 기분. 관성에 의해 걷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이렇게 살다 보면 소시민이 되겠지. 작고 큰 나의 세계에서 마음만은 부자가 되겠다. 사랑과 함께.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