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사내 시스템의 인적사항 탭을 눌렀다가 최근의 승진 순위를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무려 후배보다도 낮은 고과를 받았다. 사기업이라면 정리해고 1순위가 될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4월의 나는 상사와 싸웠고, 5일이나 연차를 냈다. 쫓기듯 먼 부서로 발령이 났다. 많은 걸 예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상상력이 부족했다. 더 참았어야 했을까. 자꾸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싸움에 서툴러서 멋지게 이기지는 못했다. 나를 밟은 사람은 기관장과 함께 승승장구하고, 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까 싶었던 상사는 자신의 자리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해 뼈저리게 아파하던 시간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발악을 했다. 그러니 그 여파가 어떻든, 나는 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한 나를 아껴주어야 한다. 잘했다고 믿어주어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로 나를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다. 잘 했다. 더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를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했고, 좋아하는 직업의 긍지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안다. 나를 이해하고 아낀다. 나를 한심하게 여기면 쉽게 부정의 마음이 스며든다. 나는 나를 좋아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그 방향이 상사들이 정한 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나를 잘 살게 할 채비가 되어 있다.
그러려면 달려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는 편안한 내가 아니라 열심인 나다. 몇 년쯤 노력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내 취향은 바뀌지를 않는다. 몸의 나태함은 나를 괴롭게 한다. 내 마음이 가장 산뜻해지는 길과 몸이 고통스러운 길이 한 방향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내가 나를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 나를 못났다고 말하고 싶은 악마같은 나를, 독하게 땀 흘리는 나는 이길 수 있다.
사기업이 아니니 정리해고될 일도 없다. 쓸데없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된다. 건강한 사람, 언제든 무슨 선택이라도 가능한 여유 있는 사람이 되자. 친절하고 현명한 개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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