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종종 우울했고, 몸이 붇는 걸 느꼈고, 무기력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저녁이 허다했다. 그 와중에 내 답보상태를 정리하는 글을 써보기도 했다.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나를 방치하면 몸이 나빠지고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법이다. 알면서도 몸이 무거워서, 머리가 지끈거려서, 귀찮아서 미뤘다. 먹기 위해 입은 쉴 새 없이 놀렸지만. 몸도 마음도 팅팅 불었다.
지난주 금요일, 괴로웠던 업무의 한 단락이 끝나고 마무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기원했지만 일이 뭐 내 마음대로 되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서로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없고 또 서로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내가 잘못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느 쪽도 조율할 여지 없이 막혀버린 상황에 사면초가란 이런 거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네. 나름 재미있네. 어정쩡할 땐 포기가 안되었는데 방법이 아예 없으니 생각을 단절할 수 있었다. 낮에 운동을 하고 저녁 약속 자리에 갔는데 오래간만에 술이 마시고 싶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어른처럼 술이나 마셔야겠다 싶었지. 근데 이게 뭐야? 평소보다 술이 쭉쭉 들어갔다. 알고 보니 운동을 한 후에는 술이 달단다.
그동안의 무기력과 게으름을 그대로 반영한 인바디표를 보고 PT를 3일간 연달아 했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근육 마사지를 받다 받다 급기야 석고대죄를 했다. 잘못하긴 했지. 나한테. 몸도 마음도 괴롭고 시원했다.
남자친구와는 주말에 하루 데이트를 한다. 이번주도 그랬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본다. 교감을 한다. 편안하게 아무 걱정 없이 머리를 비운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시간을 아껴 따뜻하고 포근하게 한 주간 부족하지 않게 너를 충전했다.
정신 차리고 출근한 오늘은 태풍이 온 듯 물이 튀겨 댔다. 흐릴 줄은 알았지만 태풍은 몰랐지. 팀장님, 어디가셨어요? 혼자 비 피하러 가셨나요? 주말 사이에 마음이 해탈했는지 창밖 모양이 그래서였는지 사는 게 비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고 사이사이 해가 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막힌 상황은 어찌어찌 길이 생겨 다들 걸어가고 있는 듯도 하고. 어떻게든 반 발짝이라도 내밀면 또 다음 발짝을 낼 자리가 생기기도 하고.
우울에 쫄딱 젖었다가 이리저리 씻어냈더니 마음에 생기가 돈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 이유도 없는 조울이지만 난 그냥 그래. 파도 치는 사람이 나야. 그러니까, 비 올 때 비 맞고 걸어가길 개의치 않듯 일상에 무기력이 내려올 때 우울을 맞기를 개의치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맞을 때야 찝찝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웃음 나니까. 살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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