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니 라운지 체어는 좋아하는 유튜버 슛뚜가 오랫동안 거실에서 쓰던 모델이다. 화면에 잡히는 의자는 간결하고 실용적이었다. 깔끔하게 핵심만 말할 것 같은 꼴이랄까. 얇게 뻗은 손잡이와 다리, 월넛 등받이, 깔끔한 방석까지 군더더기 없는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의자는 뒤로 기대기 편안하고, 곡선에 몸이 쏙 들어간다. 키가 여자치고 작지 않은 편인데(168) 엉덩이를 뒤로 붙이면 발 뒤꿈치가 닿지 않는다. 오토만이나 발을 받칠 만한 곳이 있는 편이 압도적으로 좋다. 등받이가 흠집이 잘 나서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플랫포인트 쇼룸에서 테이블과 함께 배치된 의자들은 테이블과 닿는 부분에 흠집이 있는 경우가 흔했다). 안락한 조명을 켜고 라운지 체어에 앉아 책을 읽는다. 행복하다.
볼리니 라운지 체어는 오랜 고민 끝에 받은 선물이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면서 부피가 큰 가구를 방에 들이는 게 주저됐다. 고민한 지 어언 3년째, 이렇게 오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필요한 게 맞을 터였다.
내 방에는 책상과 침대뿐이라 책상에서 책을 읽다 싫증 나면 침대에 삐딱하게 기대는 게 습관이었다(그러다 점점 누워 잠이 드는 수순으로 넘어간다). 허리와 목이 남아나질 않는 걸 알면서도 똑바로 저절로 몸이 슬슬 내려왔다. 나는 주로 목을 혹사시켰는데, 중학생 시절부터 형성된 이 습관이 내 목주름을 유발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한다(무려 고등학생 때도 목주름이 하나 있었다). 책상에서 정자세로 있기도 싫고 침대에 눕기도 싫으니 원.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가구를 열심히 찾아보게 됐다. 늘 멋지다고 생각한 의자의 브랜드를 드디어 찾아보았다. 국내 가구고 살 수 있는 금액이구나. 어느 주말, 플랫포인트 쇼룸에 들렀다. 실물을 보기 전부터 그 의자를 방에 들여둘 때가 됐다는 걸 알았다. 실물을 보고 나와 마지막으로 망설이고 있는데, 같이 보러가 준 남자친구가 이른 생일선물로 사주겠다 선언했다. 사달라는 뜻은 없다 했더니 내가 일주일 내내 그 의자가 갖고 싶다 했다나. 그랬나? 아무려나 네가 사준 물건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도 좋았다. 그냥도 소중할 텐데 네가 주면 더 소중하니까.
의자가 방에 도착한 그날부터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 새로이 알게된 사실은 앉아서 책을 보더라도 잠이 올 땐 어차피 온다는 것. 견고한 등받이에 기대 책을 읽다 보면 사뭇 기분이 좋다. 책을 읽을 만한 곳에서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자가 독서 생활을 풍요롭게 만든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지만 새 물건을 들이기도 한다. 꼭 필요한 물건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꼭 필요하다고 결론 내릴 때까지 끈기 있게 고민한다. 취향에 딱 맞는 무엇이 나타날 때까지 섣불리 물건을 들이지 않는다. 요즘 나는 매일 새 의자에서 시간을 보낸다. 멋진 의자에서 멋진 생각을 품어야지. 미니멀라이프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 취향을 지키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추신: 마음 써 준 남자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서 나도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네가.. 칼이 갖고 싶대. 어디다 쓰냐니까 좀비 사태가 일어나면 방어할 때 필요하다고 했다가(아 그냥 빨리 좀비가 되자고!), 전쟁이 나면 칼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고 했다가(아 21세기에 누가 칼 가지고 싸우냐고!), 좀비도 전쟁도 없을 땐 서랍에 넣어뒀다 가끔 꺼내보고 ‘히히’ 하며 흐뭇해하고 넣어두겠다고 했다. 칼을 보고 웃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지 걱정이 됐다. 심각한 기분이 들어서 이리저리 검색하다 ‘칼덕후’ 키워드로 나무위키까지 읽어봤는데.. 근데 의외로.. 실존하는 취미였다. 그러고 보니 네가 장검술을 연구하는 유튜브를 보여준 적도 있고, 역사 속 장수들의 칼 모양 이야기도 해준 적이 있긴 했지. 그래. 너는 귀엽지만 잡스러운 것을 보며 흐뭇해하는 나를 질타한 적이 없지. 그러니 나도 이해하려 노력하기로 했다. 네가 제시한 여러 선택지 중 그나마 예쁘장하고 캠핑용으로 판매하는 작은 칼을 주문했다. 우리 성격에 캠핑은 갈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일단은 캠핑 준비를 위해 산다고 우기고 싶다. 선물이 칼이라니, 대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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