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임감을 이고 지고
사업을 혼자 끌고 나가려니 팀장님에게 일임시켰던 일(결국은 돈)을 직접 생각해야 한다. 머리가 아프다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오를 수 없는 시꺼먼 높은 벽 같다가.. 귀찮아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와 걱정돼서 잠도 안 오는 날이 섞인다. 불안과 안정을 넘나들며 어떻게든 머리를 굴린다. 어쨌거나 4월의 나는 다 해냈을 테고 잘했다고 손뼉 치고 있겠지. 이 모든 일이 내게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2. 요리+계획 = 좋아하는 거 + 좋아하는 거
매주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 1월에서 2월은 퇴근해서 헉헉대며 1시간 반 정도를 요리에 투자했다. 요리를 좋아해서 하루 중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못견디게 부담스러운 과업이 되었다. 무리하면 안 된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루틴을 찾아야 하는 법.
세간에 유행은 따라 하면 나름 훌륭한 점도 많다. 밀프렙이 괜히 유행이겠어? 일주일 식단을 짜며 주말에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는 메뉴(볶음밥, 카레, 양배추찜..)를 적당히 섞는다. 전부 미리 준비하면 그것대로 매일의 여가가 사라지니 안된다. 30분이면 내일의 아침과 도시락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식단을 미리 정하니 한 주간 필요한 식재료도 한눈에 보인다. 과잉으로 사서 낭비할 일이 없다. 시장에서 저렴한 채소가게를 발견해 2주 정도 채소를 많이 샀기도 했는데, 결국 가지 하나를 못 먹고 버렸다. 후회막심이었다. 장보기 치트키로 활용하던 백화점 상품권도 2월 부로 다 썼다. 과잉으로 쓸 예산도 없고, 필요도 없으니 간소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
너와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You are what you eat 이잖아요? 건강함만 네 몸에 꽉 채워주고 싶다. 나도 물론이다.
3. 생일은 기쁜 날 즐거운 날
생일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날은 아니지만 고맙게도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는 시댁이 추가되었다. 너의 얼굴색이 좋아지고 살이 좀 빠진 듯하다는 이야기에 내가 뿌듯했다. 이게 가족을 챙기는 주부의 마음인가? 예상치 못한 딸기 케이크와 용돈 봉투를 받아 드니 상당히 신이 났다. 가족이 두 배가 되는 기쁨인가.
너에게 받는 생일 선물도 기쁘다. 우리는 각자 갖고 싶은 선물을 정해서 사준다. 낭만은 없지만 만족도는 200%다. 매년 물욕이 부족해 적당한 선물을 떠올리기 어려웠는데, 살림맨이 된 올해는 달랐다. 리빙용품은 갖고 싶은 게 넘쳐 나거든요!
고민 끝에 갤럭시핏과 채칼, 핸드블렌더를 선물 받았다. 매일 착용하던 갤럭시워치도 네가 사주었는데,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게 괴로워 바꿀 참이었다. 워치만큼 고사양은 필요 없어서 가벼운 핏으로 골랐다. 매일 차고 다니는데 만족도가 아주 높다. 배터리 충전을 성격 상 자주 하기는 하는데, 그냥 놔두어도 일주일 이상 문제없을 듯하다. 혁명적이야!
채칼과 핸드블렌더는 요리를 하다 가장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느낀 두 가지였다.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행복한 것! 비싼 채칼을 골랐는데 사용해 보니 마음에 쏙 든다. 너의 선물로 네가 싫어하는 당근과 양배추를 많이 잘라 먹인다. 행복하기 그지없다. 대신 핸드블렌더로는 네가 좋아하는 감자크림수프를 해 줄까 싶다(그런데 아직 집에 감자가 없다).
고등학생 때 어버이날 선물로 엄마께 도마를 선물한 적이 있다. 그때의 우리는 백화점을 자주 가지는 않았는데, 오래간만에 간 백화점에서 엄마가 무심코 예쁘다고 칭찬한 과일용 도마였다. 언니와 용돈을 모아서 방과 후에 엄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마조마하며 사러 갔었지. 엄마도 깜짝 놀라 기뻐했고 나에게는 뿌듯한 추억이었는데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작은 고모가 생일 선물로 살림살이를 받는 게 괜찮냐고 물었다고 했다. 엄마는 당연히 너무 좋다고 괜찮다고 하셨더랬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엄마도 주부가 아닌 엄마로서 갖고 싶은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까 말이야, 엄마는 진짜로 괜찮았을 것 같다. 주부여서 받은 게 아니라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걸 받은 거니까. 나도 프로용 채칼과 핸드블렌더를 언박싱하면서 진심으로 아주아주 흥겨웠거든.
4. 적당히 행복하게 길게 자주 행복하게
사주를 보았다. 몇 년 만에 찾아간 사주 상담은 입에 발린 말만 해주지도 나쁜 말만 해주지도 않는 곳이었다. 묘한 일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무조건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생이 황금빛이 되는 사주였으면 했다. 누구보다 멋지게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지금은 적당히 힘들어도 견딜만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사람이 좋다. 남이 보기에 멋지고 화려한 인생은 별로 취향이 아니다. 마냥 좋기만 한 인생도 없다. 삶이 그런 것이지. 없는 고민도 만들며 사는 게 사람이다. 적당한 고민만 이어진다면 살만한 일이다.
그리하여 적당히 말해주는 이번의 사주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견딜 수 있는 정도의 풍랑만 만난다면 나는 되는 만큼 애쓰며 조용하게 즐거워야지. 사주 선생님이 나를 적당주의자로 표현하던데 삶도 적당히가 맞는 듯싶다. 그래서 뭐, 나름 잘 살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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