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5.3.4. 하루 더 쉬는 주말은 좋아

by 푸휴푸퓨 2025. 3. 4.
728x90
반응형

1. 조카라니! 나한테 조카라니!

  언니가 임신을 했다. 몇 달 정도 기다린 소식이라 놀랍지는 않았지만 몹시 기뻤다. 나도 이제 조카가 생기는구나. 언제 어른이 되나 싶은 시기를 지나 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낯설어하던 시기도 지나 애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던 시기마저 지나 둘 다 아기를 기다리는 시기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자매의 아기는 미친듯이 귀엽다던데, 언니의 결혼식에서도 전혀 슬프지 않았던 내가 조카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일단 초음파 사진은 별 감흥이 없었는데요(언니 미안). 실제로 고구마 같은 친구를 직접 만나면 기분이 다를까? 출산 선물은 무얼 사주어야 할지도 벌써 생각한다. 보드게임 일원이 한 명 늘어나는 건 상당히 흡족하다. 빨리 커서 같이 게임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 재미있겠다. 보리야 안녕, 열 달 이따 만나자.

보리랑은 상관 없고 그냥 등갈비랑 감자수프 해먹었다고 자랑하는 짤

 

2. 운과 타이밍과 분별과 분수

  인생은 운과 타이밍이다. 알고는 있지만 해가 갈수록 더 그렇다고 느낀다. 20대에는 그걸 몰라서 노력이면 될 줄 알았다. 아니다. 세상에는 내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바꿀 수 없는 일을 분별할 줄 아는 힘을 달라는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는지 느낀다. 나도 그 분별을 원한다. 무의미한 기대 없이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어요.

  변화시킬 수 없다면 왜 애써야 하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 답도 어렴풋이 안다. 의지를 다지는 마음 자체가 삶의 활력소이자 행복일 때가 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상을 가꿔나가고 서로를 보듬는다는 존재감이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다만 미친듯이 달려가는 사람이 세상에서 더 큰 일을 해내기는 하지 않나 싶다. 난 데굴데굴 작은 일만 겨우 다잡는다. 그게 지구의 균형인지도 몰라. 30대의 나는 노선이 확실하다. 저는 작은 일이나 겨우 할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긴 해보겠습니다.

"인간은 매우 무력한 생물이고 크나큰 이 세계의 흐름은 정해져 있기에 인간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 사상가도 있었어." (중략) "그런 일들을 자주 보면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그러니까 인간은 세계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그저 유목민처럼 떠도는 무력한 존재인 셈이야." (중략)
"맞아. 그는 희망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노력을 긍정했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노력하는 의미가 없을텐데, 그는 이렇게 말했거든.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어려워요."
"어렵지. 하지만 나는 그가 의외로 중요한 말을 한 거 같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노력하라고 말이야." 류노스케가 얼굴을 찌푸리며 데쓰로를 바라본다. ”그건 너무 가혹한 얘기잖아요."
"그런가? 그래도 난 희망이 넘치는 논리 전개 같아서 그 말을 좋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전능하다는 생각으로 끝없이 달리게 하는 게 훨씬 더 가혹하지. 그런 의미에서 하나가키는 정말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셈이야."

나스카와 소스케, 스피노자의 진찰실 中

 

3. 나한테도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블로그에 일기를 쓸 때 나는 격정적인 감정을 감춘다.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읽힐 글을 다 드러내고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때로 나의 글을 다시 하나씩 읽어볼 수 있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정돈이 되어 있어서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지도, 부끄럽게 만들지도 않는다. 담담히 이땐 이런 생각을 했나  하고 넘어간다. 기억력이 나빠 기록이 없으면 대부분의 일을 잊는다. 블로그의 일기가 뜸해지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듬성듬성 기억하게 만든다. 내게 일주일에 한 번의 기억은 꼭 필요하다. 최소한의 갈무리라도 해주어야 한다.

  마음의 파도를 주체하지 못해 줄줄 써내려간 손으로 쓴 일기는 거의 펼쳐보지 않다가 버린다. 그때의 소용돌이가 떠올라 지금의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게 싫기도 하고, 세상의 근심이 다 나에게만 쏠린 것처럼 징징댄 모습이 어이가 없다(행복한 내용도 있지만 그마저도 유치함이 넘쳐 마주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블로그 글쓰기는 언제라도 누군가가 아니라 미래의 내가 차분히 나를 볼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일이었다. 데이터를 낭비하는 헛된 메아리가 아니었다고. 몇 년 간 이어온 행동의 의의를 문득 떠올리고 넘치게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어느 주말이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