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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5.9.3. 요리왕 백룡이 되는 길

by 푸휴푸퓨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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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요리꽝

  새카만 냄비를 만든 것이 지난 몇 달간 대체 몇 번이던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어떻게 닦는지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많이 심각하면 물에 과탄산 소다를 넣고 끓이면 되고, 적당히 심각하면 과탄산 소다 넣고 밤새 놔두면 된다. (까만 자국을 없애준다는 폴란드 수세미는 별 소용이 없더라고요.)

  평일의 도시락을 위해 김치찜을 불 위에 얹어 두었다. 냄새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맛있는 냄새가 난 지 오래지 않아 순식간에 탄내가 나지 뭐야? 맡자마자 부엌으로 뛰어갔더니 이건 뭐 연기가 뿜어 나오는 아수라장이었다. 바닥이 새카만 냄비에 얼른 물을 붓고 창문을 열었지만 타버린 고춧가루의 위력은 대단했다. 목이 찢어지게 기침을 하며 컹컹대니 온 집안이 지뢰밭 같았다. 얼른 씻고 외출하려 했는데 화장실에서도 숨이 안 쉬어지지 뭐야. 겨우 머리에 물칠을 하고 옷방에서 뛰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현관문에서 누군가 띵동을 했다. 설마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고 항의하러 온 건가? 이럴 땐 언제나 든든한 너를 내보내고 나는 방문 뒤로 숨었다. 벨을 누른 이는 다행히 소독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하며 당황하셨는데, 너가 음식을 태웠다 착각한 아저씨에게 너는 친절하게도 아내가 태웠다고 정정을 해드렸다. 끊임없이 기침을 하느라 괴로웠던 아저씨의 방문은 순식간에 소독을 끝내고 “어우 소독이고 뭐고 이건 안 되겠네요” 하며 도주하시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나와 너도 그 뒤를 따라 집을 탈출했다. 몇 시간 정도 언니와 떡볶이 및 케이크를 섭취하고 돌아왔더니 다행히 냄새는 많이 가셨다. 너는 타버린 김치찜을 동네방네 소문냈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타다 만 김치찜을 최대한 구출했다. 물이 졸아들어 냄비가 타는 것과 고춧가루가 타서 냄비가 타는 것은 차원이 몇 겹이나 다른 일이었다. 다행히 냄비는 수월하게 잘 닦였지만.

추신: 구출된 김치와 고기로 만든 김치찌개를 먹은 너는 다시는 탄 음식을 다시 쓰지 말자고 했다. 내 입에도 상당히 맛이 없었다. 미안하다 남편.

 

2. (오늘은) 요리왕

  동기가 밭에서 난 깻잎을 조금 준다기에 깻잎찜 레시피를 엄마에게 물어봤다. 깻잎찜을 그리워하는 건 보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자기도 먹고싶다고 카톡으로 귀청이 따갑게 소리쳤다. 아이 참, 어쩔 수 없이 깻잎 100장을 더 사서 처음으로 깻잎찜 제조를 시도했다.

  완벽한 레시피를 찾지도 않고 얼레벌레 시작했는데 깻잎을 한 장씩 닦아다가 두 장 사이에 양념을 넣자니 영 귀찮았다. 그 와중에 양념이 모자라서 두 번이나 더 제조하게 되어 맛을 일절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짜서 뒤로 넘어가는 거 아녀? 그 와중에 냄비 태움의 트라우마로 인해 물을 한 바가지 넣었더니 깻잎찜이 아니라 깻잎탕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해주던 기억 속 모습과는 너무 다른데.

  그런데 그 얼레벌레가 대체 어떻게 통했는지 완성된 깻잎찜이 기가 막혔다. 2/3쯤 들고 부모님댁에 갔는데 언니와 형부까지 포함해 모두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깻잎 사이에 양념을 넣으며 그렇게 귀찮다고 툴툴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다 들고 가는 것이었다고 후회한 (오늘만) 요리왕은 어깨가 하늘까지 승천했다. 맛있다는 말이 세상을 바꾼다!

깻잎찜에는 작은 멸치를 넣으면 맛이 아주 좋습니다

 

 

3. 휘발시키기 아까워 남기는 소감

  회사 동료에게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읽고 쌍둥이 자매의 삶이 대비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박완서 작가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추천받았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은 수능 공부 이후로 처음 접했다.

  두 권에 달하는 소설은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읽으니 허겁지겁 끝을 보고 싶은 드라마 같았다. 마치 방학 때 엄마가 시대극 아침드라마를 보는데 “뭐 이런걸 봐?” 하면서 옆에 앉았다가 다음날부터 “엄마 빨리빨리! 드라마 시작한다!!” 하게 되는 통속극이라고나 할까. 마지막 등장인물의 독백까지도 너무나 연극적이라 신파가 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바로 그 신파 때문에 우리는 한국 이야기를 보니까. 엄청나게 한국적인 소설이었다.

  이런 감상을 동료에게 전했더니 이 감상이 휘발되는 게 아깝다며 어디라도 적어두라 해서 남기는 기록이다. 수능 준비를 할 때 ‘박완서는 중산층의 허위’를 달달 외울 게 아니라 소설을 읽었더라면 좋았겠어. 그리고 나를 내다 버리지 않은 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깻잎찜 해준다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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