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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하루 2만보 만큼 신나는 삿포로 여행 (Day 3)

by 푸휴푸퓨 2026.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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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포로 여행이 기억에서 흐려졌다. 사소한 추억을 잊었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작성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다. 다녀온 지 3개월이 지나서 올리는 글에 대한 꾸역꾸역의 타당성 부여. 어떻게든 계속 쓴다는 말씀.

 


 

  3일째 아침은 벼르던 해산물 아침을 위해 니조시장에 갔다. 너는 해산물의 비린내를 싫어하고 평균보다 예민한 장 덕에 탈도 잘 나지만 그래도.. 그래도 한 번쯤 회가 와르르 덮인 밥을 먹고 싶었다. 여정 중 해산물을 딱 한 끼만 넣은 내 마음을 너도 알아서 좋다고 괜찮다고, 시장 식당까지의 길을 안내해 줬다.

  줄 서기 싫어 맛집 옆 집을 가는 스타일인데 그 옆 집이 구글에 안내된 시각에 문을 안 열었다면? 그런데 맛집이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 같다면? 맛집 앞을 기웃거리며 다양한 메뉴 중 무엇을 먹을까 고심했다. 1인분에 몇 만 원을 태우는 게 맞나 싶기는 했지만 나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와구와구 먹겠나 싶은 우니와 연어가 올라간 덮밥(4,380엔)을, 너는 그나마 좋아하는 게살만 올라간 덮밥(3,380엔)을 골랐다.

 

한국인은 죄다 덮밥을 시키고 일본인은 굴이라던가 하는 다른 메뉴를 시키더라고? 아무래도 진짜 괜찮은 걸 못 먹은 것도 같았다

 

  간단하게 감상을 요약하자면 몹시 푸짐하게 나오긴 했으나 겨울의 아침으로 먹기엔 너무 차갑고, 가격은 비싸고, 먹다 보면 조금 질릴 만큼 많아서 오히려 양을 줄이고 가격을 낮추었으면 했다. 대식가가 이런 말을 하다니 말 다했죠? 와중에 나는 이것저것 올라가기나 했지, 오로지 게살과 밥만 퍼먹던 너는 더 곤란했을 거다. 또 삿포로에 간다해도 방문하지는 않겠지만 일본의 시장을 잠깐 구경한 점은 좋았다. 좋은 해산물 원물을 사서 숙소의 식탁에서 퍼먹거나 할 수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해.

  우유가 맛있는 삿포로에 왔으니 라떼 한 잔을 즐겨야 한다는 마음과 누구나 가는 곳은 싫다는 마음이 섞여 조금 먼 곳의 카페를 찾아갔다. 우리는 내가 목적지를 찾으면 네가 길 안내를 하는 시스템인데 늘 관광인은 가지 않는 카페를 골라 "이게 맞냐"는 너의 의문이 섞인 표정을 보곤 한다. 이번의 카페도 마찬가지여서 관광객이라면 가지 않을 듯한 길을 하염없이 걸어갔다. 결국 마주한 곳은 어느 신문사 1층에 있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지만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야 천천히 셔터를 올리던, 모두가 출근을 하는데 우리만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는 그런 곳이었지. 라떼가 맛있긴 한데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해 본다. 

 

힘겹게 찾아왔지만 라떼를 마시지 않는 소신 아아박 선생

 

  진눈깨비가 옆으로 내리는 날씨가 되어 숙소에 들어와 잠시 쉬었다. 20대 때는 숙소에 와서 쉬는 으른들을 이해를 못 했지 뭐예요? 도야 호수로 옮기는 날이라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달달달 끌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목적지는 쇼군 버거. 수프카레를 먹으러 행군하던 중 기가 막힌 버거 냄새에 호로록 이끌려 들어가고 싶었으나 정신력으로 참아낸 곳이었다. 아무래도 아침밥이 너무 차가웠거든. 전날 저녁부터 입가심으로 맥도날드 치즈버거 하나 먹고 싶다고 했던 너를 위해 고른 곳이기도 했다.

 

맛없없 비주얼 아니겠슴까?

 

  매장 분위기는 닛폰+아메리카 같은데 이름은 쇼군이오 로고는 장수의 투구인 이곳은 와규 수제버거가 유명한 곳이었다. 욕심껏 두 세트를 시켰는데요, 발군의 1등은 유바리멜론 밀크셰이크였다. 멜론소다 같은 맛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유명한 멜론을 먹지 못하는 철이라는 게 아쉬워 시켰는데 우리 둘 다 눈이 똥그래질 만큼 맛있었다. 밀크셰이크가 이만큼이면 진짜 유바리멜론은 얼마나 맛있을까! 버거는 맛있긴 했으나 우리 입맛에는 꽤 짰다. 먹는 중 다른 커플도 시켰는데 먹는 폼이 역시나 남자분이 좋아하는 식당 같았다. 세계의 남자들, 입맛이 비슷하군.

  밥을 먹고 바로 버스 타는 곳에 가기에는 시간이 좀 남아서 상점가를 돌기로 했다. 일본에 도착했을 때부터 당고를 먹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방문한 편의점마다 없어서 아쉬웠던 참이었다. 검색해 보니 또 유명한 당고집이 있지 않겠어요? 맛별로 양껏 당고를 사고(더 많이 사지 않음을 후회했다) 가챠샵도 기웃거리고, 느긋하게 산도를 또 사러 갔더니 기나긴 줄이 있어 한껏 당황했다. 처음 왔는데 이렇게 줄이 있었으면 안 먹었을 거라며 럭키비키를 외친 뒤 뚱뚱쓰는 멈추지 않고 다른 가게에 갔다. 도착한 곳은 동구리 오도리점. 삿포로의 성심당에 가서 저렴한 가격에 놀라 갑자기 빵을 여럿 샀는데요,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오래 걸은 너와 터질듯한 가방을 메고 오래 걸은 나는 지쳐 나동그라질 판이라 사진은 일절 찍지 않았답니다(뭐 그렇게 됐다!). 

 

당고 맛집에선 현금을 준비하자!

 

  삿포로 여행은 도야 호수의 어느 숙소를 추천받아 구상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과언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게 팩트), 좋은 숙소는 여행 말미에 두어야 만족감이 폭발하는 법. 도야호의 코노스미카는 삿포로 시내에서 송영버스를 운행해 주는 게 뚜벅이에게 더욱 큰 장점이었다. 선팔레스로 만족할까 하다 기왕 여행하는 거 좋은 곳에 가보기로 했다. 방 안에 탕이 있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그렇게 기대만발로 출발한 버스에서 예상 밖의 사건이 있었다. 눈발이 미미하게 휘날리던 삿포로를 떠나 교외로 나간 뒤, 갑작스럽게 어느 할아버지께서 119를 불러야겠다고 버스를 멈춰 세웠다. 외양으로 (내가) 보기에는 큰 문제없어 보이셨는데 무언가 컨디션이 떨어지신 모양. 구급차가 와서 할아버지를 싣고 떠난 뒤 어느 병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일본도 119인지 이치이치큐라고 했고 기사가 부인에게 스마트폰이 있으시냐고 물은 게 나만의 신기한 점이었지(요즘도 없는 분이 있으시단 말이야? 근데 진짜 없어서 기사님의 핸드폰을 빌리셨다). 할아버지의 용태가 심각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일본인들은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쿠마(곰)라는 단어만 겨우 알아들은 나의 추측으로는 '예상 밖의 일은 쿠마밖에 생각 못했는데 다른 일이 생겼네!'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또 출발한 버스에서 황천길에 갈 것 같아 벌벌 떨었다는 것도 내게는 예상 밖의 사건이었다. 미미하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폭설이 쏟아져내렸고, 순식간에 쏟아지는 눈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버스가 느릿느릿 달리는 상황이 되었다. 스노우체인은 끼우셨던가..? 이러다 삐끗하면 바로 절벽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거 아냐!

 

할 수 있는 건 하염없이 눈 사진 찍기 뿐..

 

  이러다 죽겠다고 한껏 쫄은 나와 달리 본인은 모두 평안했다. 달리는 버스 옆으로 곰이 뛰어오진 않을까 상상했던 게 우스울 만큼 눈이 마구 뛰어왔다. 운전기사의 목숨도 함께 달려있으니 잘 해주시겠지... 믿다보니 돌아오는 송영버스는 못 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말했지. 한 13만 원 투자해서 기차타고 공항에 갈까? 표는 있긴 있어. 겁에 옴팡 질려서는 정신을 못차리는 내게 너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아 왜!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 끝에 '네가 나를 말린다면 이유가 납득이 안되더라도 일단 따르자. 결국 그게 맞음을 알게 된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예약을 중단했다. 

  중간에 추돌사고를 목격하기도 했지만 버스는 뚱땅뚱땅 잘도 눈을 헤쳐나갔고, 어느 순간 하늘이 갰다. 나의 혼비백산이 우스울만큼 파랗게 개어버렸지 뭐예요~ 전문가는 다르다는 소리를 하며 코노스미카에 도착했다. 기대한 만큼 깔끔한 시설에 멋진 뷰, 방 안의 탕까지 모든 게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설경.. 이뿌긴 해...

 

  코노스미카에 대해 검색하면 일관되게 나오는 것이 '너무 좋은데 밥은 결혼식장 밥 같다'는 평이었다. 뚱보에게도 그럴까 했는데 뚱보에게도 그랬다. 그래도 이런저런 요소로 재미있었는데, 우선은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더니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일본인이 객실에 비치된 유카타를 입고 있어서 신기했다(일본을 잘 아는 동료 왈: 그걸 안 입었다고!?). 우리가 진짜 일본인의 국내 휴양지에 찾아왔나 봐. 밥을 먹고 기념품샵을 기웃거릴 때도 일본인 아주머니들 사이에 끼었다. 자그마한 일본인 어머니들 사이에서 일본스러운 앞치마며 기념품을 구경하니 웃기는 게 없는데도 웃음이 터졌다. 뭐랄까, 짱구에 나오는 진짜 일본인들이 국내 여행을 다니면 이렇게 다닐 것 같아. 우리는 꼼꼼히 매장을 살펴보고 오랫동안 팔리지 않았을 것 같은 올빼미 가족 장식품을 샀다. 너무 오래간만에 팔려서 직원들이 허둥거리는 기색이라 또 재미있었다. 어때요. 한국에서 온 두 뚱보가 올빼미를 사니까 신기해요?

 

기본 세팅된 음식+뷔페 모두 구색은 훌륭한데... 맛은 입맛에 썩 맞지 않는...

 

  방에 돌아온 우리는 방을 즐기며 한껏 행복해 했다.  쾌적한 소파와 침대도 좋고, 뜨끈한 물도 좋아! 다만 도착해서 바로 탕에 담그지 않으면 첫날은 깜깜한 호수 뷰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다(뚱보는 지쳐서 낮잠을 잤습니다). 동구리 빵으로 입맛을 채우며 다음에 오거든 음식을 잔뜩 싸와서 2박을 하자고 약속했다. 그때는 당고도 더 많이 사자! 늘 먹으면서도 더 먹기를 갈망하는 우리의 모습. 그랬다. (겨울인데)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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