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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2026.3.21.-22. 쓸 데 없어서 더 신나는 전주 탐방 (1편)

by 푸휴푸퓨 2026.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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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도 못했던 전주 근무 시절을 지나, 전주라는 단어만 들어도 학을 떼던 날을 지나, 전주에 방문했더니 이런 게 달라졌네 하며 그 시절 기억이 선명하던 시기를 지나, 그때 많이 변했다고 기억했던 곳인데 원래 어땠길래 뭐가 바뀌다 생각했는지 알쏭달쏭해져진, 그래서 새로 만든 추억으로 도시를 다시 덮고 돌아온 전주 여행기 시작!

 


 

  왜 갑자기 전주를 여행지로 정했느냐 물으신다면, 15년쯤 전에 엄마와 함께한 전주 여행에서 사왔던 종이부채를 다시 사고 싶어서다. 작년 여름 손풍기가 고장 나서(여기에 기록해뒀다) 여름이 오기 전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21세기에 무슨 부채냐 싶겠지만 종이부채는 플라스틱 부채와는 다른 시원한 바람이 부는 데다 무엇보다 충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 풍류가 있기도 하잖아요? 전주 한옥마을에 가서 부채를 사고 마음껏 먹부림을 하기로 결심했다. 즐겨 보는 김밥집 브이로그를 떠올리며 김밥도 꼭 먹으려고 했는데.

   김밥집 사장님이 작은 수술을 하셔야 해서 내가 여행가는 주 금요일까지 영업을 하고 일주일간 쉰다는 소식을 알렸다. 싸장님 제 김밥은..? 김밥은! 비빔칼국수와 돈까스, 김밥을 야무지게 배달시키려던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두고 여정을 시작했다.

 


 

  겨울코트를 벗어던지고 내려온 전주는 딱 여행하기 좋았다. 고속버스가 호남제일문의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멈춰섰을 때, 예전에 이곳이 컨테이너와 흙바닥이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지금의 번화한 모습과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데다가 과거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낯선 곳인 느낌이 들었다. 기억력 대체 무슨 일이죠? 헤아려보면 벌써 10년이나 지났긴 했지. 그 10년을 살아남은 좋아하던 식당으로 너를 데려갔다.

 

다찌만 있을 때가 더 좋았다는건 뜨내기의 얄팍한 마음이겠지

 

  남부시장 2층의 청년몰은 대부분의 가게가 변하거나 사라졌는데, 내가 좋아하던 '백수의 찬'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심지어 옆 칸까지 규모를 늘렸더라고? 여전하던 다찌석에 앉아 조리를 구경하며 음식을 먹었다. 나쁘진 않은데... 넓어진 가게가 낯설고 맛이 특출 나지 않더라고. 몇 년 전 다른 친구들을 데려갔을 때만 해도 만족도가 더 높았다고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너를 일부러 데려간 것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관광지에서 눈 크게 뜨고 먹을 곳은 아니게 되었네. 원래 이랬는지 내가 변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변함없는 사장님이 계셨던 곳.

 

청년몰의 귀여운 치즈냥은 변함없음

 

  후식을 먹으러 유튜브를 보고 알게된 카페를 찾아가던 중 오래된 문구점을 발견했다. 너와 요즘 오타쿠의 '문탐(문방구 탐방)' 유튜브를 즐겨 보았다. 우리도 문탐을 해보자고! 낡은 문구류로 어수선했던 문구점 안에는 외출복을 입은 노부부가 계셨다. 막 외출을 나갈 참이시거나 외출하셨다 잠깐 들르셨거나, 뜻밖의 손님들이 뜻밖의 오래된 물건들을 구경하고 이것저것 구입하니 재미있으셨던 모양이다. 집의 보안 레벨을 올리자며 오래된 야구 배트를 기어이 사는 너에게 동조해 주신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마구 눈탱이를 치며 낡은 문구를 팔았다. 둘 다 흥정에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어 부르시는 대로 드렸다. 눈탱이도 재미라고 낄낄거리며 전주의 낡은 골목을 걸으니 기분이 삼삼했다.

 

시계 나무 도장은 샀는데 스탬프는 없는 나 / 야구는 몰라도 배트는 사고싶은 너 / 우리는 재밌었지만 아무에게도 추천은 못할 눈탱 문구점

 

  나도 유튜브로 알게 된 카페 '마래당'은 한적한 길과는 달리 사람이 북적북적 부글부글하여 당연히 앉을 수 없었다. 너와 나는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아무 카페에서 마실 법한 커피를 마시며 문구점 탐방을 본격적으로 하자는 작당을 했다. 그래! 한옥마을 뭐 별거 있어? 주변의 문구점, 완구점을 검색했다.

  샬롬문구점은 문을 닫았고, 어느 문구점은 아예 없어졌다. 겨우 찾은 문구점에는 정말 오피스에서 쓸법한 문구만 가득해서 살 것이 없었다. 문구점 탐방을 하고 있다며 주인 할아버지께 네가 들고 있는 배트를 보여드렸다. 얼마 주고 샀냐기에 값을 말씀드리니 으에엥? 하시다가 거 우리집 와서 사지 그랬냐고 하셨다. 나한테 눈탱이 맞지 그랬느냐는 어감으로 들려 문구점을 나와 둘이 한참 웃었다. 누가 봐도 호구당한 것 맞구나? 우리는 또 다른 집에서 호구가 되고자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어느 골목의 '통일문구-미로유통-형제종합완구' 모두 문을 닫았다. 안타까워하며 지도에서는 찾지 못했던 '백화노트사'의 문을 열어봤는데.... 드디어 열렸다. 마침내!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을 둘러보다 문구용 모양펀치와 2012년에 생산된 전투기 프라모델 세 개를 샀다. 프라모델 세 개가 고작 2000원! 눈탱이를 맞지 않으니 그건 그것대로 또 신이 나서 비닐봉지를 흔들었다.

 

간판 폰트도 참 귀엽지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이제는 한옥마을에 가보자며 길을 나섰다. 한옥마을에는 참 사람이 많더라고? 북적이는 인파와 관광지에서 파는 먹을거리, 보급형 한복 체험 옷이 섞인 한옥마을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관광에 전혀 열의가 생기지 않아서 흑임자 빙수를 하나 때리고, 관광지 한복판의 문구점도 한 번 들러봤다가(역시나 아무것도 살 게 없었다) 결국 관광지에서 빠져 나와 한참 떨어진 어느 아파트의 문구점에 갔다. 문구점 자체는 볼만한 것이 없었지만 문구점을 찾아가는 길에 문이 닫혔을까 걱정하다 뿅망치와 문구점용 과자를 들고 오는 초딩 3명을 보며 너무 문구점에 다녀온 티가 나서 웃었고, 전주교육대학교 25학번이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을 봤고, 어느 빈티지라고 쓰여있는 소품샵에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너무나 멋들어진 황토색 가죽점퍼를 입으신 어르신이 들어가서 쪼는 바람에 미처 용기를 못 내고 지나갔으며, 부채박물관이라고 적힌 가게의 문이 (또) 잠겨있어 아쉬워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구점을 찾아간 것이 참 즐거웠다.

 

예전에는 웨이팅을 굉장히 길게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전혀 안하는 외할머니 솜씨

 

  기념품 100선 어쩌구 하는 가게를 구경하고 전주비빔빵집도 지나(사자! 안돼!의 반복) 과한 산책에 체력이 다한 너는 관광지 한복판의 2층에서 발마사지를 하자고 주장했다. 오... 전혀 땡기지 않는걸? 하지만 여행에서 여간하면 내게 반하는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네가 진짜진짜 지인짜 하고 싶다기에 따라갔다. 누가 이런 데서 마사지를 하나 싶었는데 손님이 끊임없이 많았고요, 족욕통에 발을 넣고 어깨에 승모근 마사지기를 둘러쓴 30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목 마사지기를 하나 따라서 구입해볼까 하고 검색도 하기는 했는데 아직 사지는 않았다. 호호.)

 

만족스러워하는 휴대폰러버 박씨

 


 

  우리의 평소 체력을 고려할 때 이정도까지의 여정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하루의 일정으로 몹시 충분했으나 아직 환한 낮이었고, 일정은 끝나지 않았고, 여기까지 쓰는 나의 체력도 고갈되었기에 1탄은 그만 마무리한다. 좋은 날씨에 좋은 기분으로 한껏 신나게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며 이제 전주를 떠올리면 전 직장이 아니라 너와의 여행이 먼저 연상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쌓인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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