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틀차,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가 오는데 그마저도 강풍으로 인해 옆으로 내리고 있다면? 두 집좋아인간은 집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외출을 여행자 신분이기에 근근이 나섰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현지인도 꺄아악 당황하는 아침이었다. 우리가 비를 피하려 들어간 곳에 일본인도 뒤집힌 우산을 들고 함께 들어오니 웃음이 났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집에 가고 싶어 구글 지도를 누르고 눌러 찾은 작은 카페는 많이 알려지지 않을 이유가 있는 집이었다. 다양한 커피 원두에 혹해서 갔는데 너무 작고 식사거리가 없더라고요. 소박한 빵을 씹으며 두 대식가는 오타루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리라 다짐을 했다. 비바람을 꾸역꾸역 헤치고 도착해서 쬐깐한 식빵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 이 말이에요.


삿포로 역에서 오타루 가는 기차표를 샀다. 그런데… 일본 원래 기차 시각을 철통같이 지키는 곳이 아니었나요? 10시 기차인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플랫폼은 북새통이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정석 기차표를 샀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그런 것 필요 없다고 말한 자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뒤늦게 온 열차를 끼어 타서도 열차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해 문 앞에 적당히 섰다. 그래도 여행지는 좋은 법이라 흐린 창밖으로 해변이 나타나면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물건 들고 탑승하는 아주머니 짐도 훌쩍 들어 올려 드렸다(힘 좋은 외국인 녀성!).


오타루에 도착해서도 비바람이 멎지 않아 와라라라 소리를 지르며 관광지로 걸어갔다. 카페로 가자! 무려 대기까지 해서 착석한 르타오는 맛이 없으면 큰일일 뻔했는데 시킨 메뉴 모두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주변의 일본인 구경도 사뭇 재미있었다. 일본 소설에 디저트 가게에 여자들만 많다는 묘사가 많이 나오곤 하지만 한국도 여자가 많긴 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모두가 여성이지 뭐야. 데이트하는 커플이 있을 법도 한데! 게다가 다들 엄청나게 러블리한 스타일이라 후질그레한 관광객은 상당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때 이후로 옷가게를 지나갈 때 유심히 살펴보니 전반적으로 일본 여성은 한국보다 사랑스러운 옷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가령 리본이라던지, 퍼프소매라던지..


그리고 오타루를 멋지게 구경하면 좋았을 텐데, 비는 그쳤으나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 너와 나는 조금 지쳤다. 몇 개의 기념품 가게를 들러 젓가락과 피규어를 샀지만 그뿐이었다. 오르골 전당인지 뭐시기가 들어가면 예쁘고 크다는데 그런지도 모르고 지나쳤고, 라멘이라도 먹고 갈까 싶었는데 네가 관광지의 식당보다 그냥 삿포로로 돌아가서 먹었으면 하는 의견을 비쳐서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두 뚱땡이는 웨이팅이 싫지요? 삿포로에 도착해 찾아둔 맛집에 힘을 내서 도착했더니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어. 손님이 거의 없는 옆 가게에 들어갔고, 그냥저냥한 라멘인지 소바인지를 먹었다. 우리다워서 킬킬 웃음이 났다.


오후에는 삿포로 시내의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센트럴 문구점에 가서 스티커를 왕창 구경하고 소심하게 구매를 했다. 너의 아버지가 사케를 사 오기를 바라셔서 가격 비교를 위해 돌기도 하고(돌아도 아무 쓸데없었음이 결국 밝혀졌다), 스탠다드 프로덕트, 다이소, 무지 등을 돌며 마음에 드는 소품을 사기도 했다. 특히 스탠다드 프로덕트에서는 제법 예쁜 아크릴 3단 서랍을 샀는데, 투명한 주황색이 너무 멋스러워서 같은 재질로 된 다른 소품을 더 사 왔어도 좋았겠다고 오래 생각했다. 파란색도 있었는데, 아깝다 아까워.

지쳐 나가 똥그라질 판이었지만 관광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수프카레 맛집을 찾아갔다. 스아게가 1순위였지만 웨이팅이 역시 엄청났다. 여행 직전 추성훈의 유튜브에서 스아게의 극찬이 방영되었기에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2호점도 웨이팅이 많으리라 예상 못했다면 우스운 일일까? 바로 근처 2층의 분점을 찾아갔더니 건물 앞이 텅 비어서 역시 우리가 최고라고 자신했던 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도로 닫힘을 누르고 바로 내려올 만큼 웨이팅 인원이 꽉 차 있었다. 스프카레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음식이란 말인가! 그래도 삿포로인데 수프카레는 먹어야 한다는 마음에 조금 더 힘을 냈다. 여느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기가막히는 수제버거의 냄새를 뒤로 하고 조금 떨어진 스프카레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관광객이니까.


지인의 추천으로 찾아간 소울스토어는 나와 너 빼고 모두 일본인이라 몹시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한 테이블을 차지해서 웨이팅을 전혀 하지 않은 것도 흐뭇했다. 추천받은 대로 브로콜리를 추가해서 먹은 수프카레는 뜨끄으은한 국밥같았다. 추운 날씨에 안경에 김이 서리도록 따뜻한 식당, 김이 폴폴 나는 카레 국물..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 아주 든든했다. 음식 자체는 별 다섯개였는데요, 패딩에 온통 스프카레 냄새가 배어 다음날까지도 내가 스프카레 인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 가게의 문제인지 수프카레가 으레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모든 일정을 완료한 뚱보는 숙소로 엉금엉금 기어갔고요. 젖 먹던 힘을 발휘해 이 날은 그래도 씻고 잤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풀고 보니 센트럴 문구점에서 충분히 사지 못한 스티커가 영 눈에 아른거렸다. 너는 내게 한 번 더 가서 여한 없이 사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래야 할까 고민하며 일단 쿨쿨 잤다. 여행, 원래 이렇게 빡세게 하는 거예요?
노는 것도 젊어서 놀아야 한다고, 운동부족러가 며칠을 2만 보를 넘게 걸어 다니니 몸이 고장이 났다. 걷다 보면 발이 아프다 못해 허리가 아팠고, 집에 돌아오고도 한참을 오른발 아치가 아파서 고생했다. 이런 증상, 20대 때는 없었거든요.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훌쩍 멀쩡해지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좋았던 시절이 있어 좋기도 했다. 그렇게 아플 줄 모르고 삿포로에서는 이를 악물고 돌아다녔네 그려. 운전을 못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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