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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하루 2만보 만큼 신나는 삿포로 여행 (Day 4)

by 푸휴푸퓨 2026.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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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근 해가 떴습니다. 도야 호수의 숙박객은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창밖에 기대했던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걸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지만 눈이 오기에는 이르다 싶어 포기했는데, 어제의 고난이고 뭐고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았다. 너는 나보다도 더 사진을 찍지 않는데, 그런 네가 정말 멋지다며 풍경을 거듭 찍었다. 그 모습을 보니 흐뭇하더라고. 이러려고 살지!

 

방에서 and 로비에서 and 그걸 찍는 너

 

  아침 9시 반에 시내로 가는 버스가 출발이라 그저 그럴 맛이 기대되는 조식은 포기했다. 아무리 눈이 그쳤더라도 어제의 도로 상황이 정말 최악이었던 터라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도 계속 걱정했는데(현지 일본인들이 별 생각 없이 모두 버스를 탄다며 억지로 안심하려 애썼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알겠더라고. 아, 여기 선진국이지? 그 많던 눈이 거짓말처럼 깔끔하게 싹 치워져 있었다. 눈의 고장 삿포로가 제설에 특화되어 있으리란 걸 생각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 맛에 일본 여행한다며 신나게 창밖 풍경을 찍었다. 

 

쿠마 꼬리라도 구경할 수 있을까 해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쉽..

 

  중간 휴게소에 혼자 내렸던 네가 '아게이모'라는 휴게소의 튀긴 통감자 간식을 사 왔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했음에도 여기 대표메뉴라 사 왔다는 간식왕에게 그래그래 잘했어~ 하는 의례적 칭찬을 했는데 아니 이게 뭐야. 일본에서 먹은 모든 간식 중 제일 맛있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1번으로 생각나는 음식이 아게이모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진심으로 너무너무 맛있어서 한국에서도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홋카이도의 멋진 감자가 없으니 그 맛이 나지 않겠지. 듣도 보도 못한 아게이모! 제일 좋아하게 된 아게이모! 탄수화물 러버라면 드셔보라 아게이모! 구황작물 러버여 들고 일어나라 아게이모! 도야호에 2박3일하러 또 가면 이 휴게서는 꼭 들르리라 다짐하였다. 

 

사진이 없어서 첨부하는 모르는 분의 블로그 후기. 진짜,, 마싰어요,,

[홋카이도] 나카야마고게 휴게소 아게이모=튀긴.. : 네이버블로그

 

[홋카이도] 나카야마고게 휴게소 아게이모=튀긴통감자👍

2024.4.20 SAT 도야로 가는길 호텔 전세 버스타고 삿포로에서 1시간반쯤 갔을까. 나카야마토게(나카야마...

blog.naver.com

 

  삿포로 시내에 돌아와 다이마루 후지 센트럴 문구점에 다시 가서 눈앞에 아른거리던 스티커를 샀다. 아무리 추워도 추천받은 녹차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어서 시내를 싸돌아 쳤다. 너무 무거운 캐리어와 가방을 각자 들고 이고 바닥엔 녹은 눈이 질척거리고 지지고 볶는데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말에 따라와 준 너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너도.. 이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말차 소프트콘을 먹는 건 못하겠다더라고. 용감하게 혼자 샀는데요, 예. 맛있었지만 한겨울 날씨에 길에서 먹을 것은 아니었습니다. 너는 네가 선택한 아게이모와 내가 선택한 말차 소프트콘을 비교하며 자신의 선택이 짱이라고 아주 생색을 냈다. 쒸익. 맞말이긴 한데 어쩌라고!

 

모자이크 속에 감춘 간식왕의 지친 표정. '그래.. 춥다면서 샀으니까 맛있게 먹어봐..'

 

  삿포로 최후의 점심은 라멘으로 정했다. 아무래도 한 번 먹은 라멘이 영 맛이 없었죠? 쾌적한 곳에서 먹고 싶어 노포 맛집 대신 삿포로역과 연결된 쇼핑몰 안의 라멘집을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대만족이었다. 아무래도 평균적인 일본 음식(짠데 묘하게 밍밍하여 느끼해져서 김치가 먹고싶은)에 지쳐있었나 봐. 일본 음식 답지 않은 얼큰한 국물에 박수를 짝짝 치며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라멘답게 당연히 짜긴 짰다).

 

맛있지만 집 가서 김치찌개 먹고 싶었다고 해도 될까요? 하하

 

  여행 계획을 세울 땐 돌아오는 공항에서 이것저것 많이 할 생각이 있었다. 신치토세 공항은 크고 가게가 많다기에 꿈이 컸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하지만 이미 몇 시간 동안 짐을 업고 다닌 우리에게 좌석이 없는 가게 구경은 사치였다. 아이스크림? 맛 상관없고 의자 있는 곳으로 가! 그렇게 해서 어느 블로그에서도 본 적 없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요(몇 달이 지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이게 뭐야. 너무 상큼하고 맛있어서 대만족 했다. 나름대로 홋카이도인지 삿포로 특산물 무슨 열매였는데 모르겠고... 아, 뚱보 만족시키기 쉽다!

 

무슨 열매일까... 무슨 커피집이었을까... 난 누구 여긴 어디...

 

  출국장 바로 앞에 작은 돈키호테가 있었는데 엔화가 조금 남은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갑자기 쇼핑을 시작했다. 삼각김밥 틀이랑 장바구니랑 홋카이도 특산품 빼빼로를 샀고, 출국장 안에 들어가서는 이토엔으로 달려가 종류별로 차를 샀다. 남은 돈은 점점 줄어들었는데, 무언가 간식을 사고 더 사고 싶은 게 없다던 너는 마지막으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자고 했다. 그런데... 지쳐 나가 똥그라질 판임에도 나름 특산품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던 내가 출국장 이쪽의 아이스크림 매대 말고 저쪽으로 가자고 끌고 갔더니 그분들이 퇴근, 이쪽으로 다시 돌아오니 그 사이에 이쪽도 퇴근, 돌아오는 길에 봤던 중간 가게로 갔더니 거기도 그새 마감을 친 후였다. 너는 아무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도 되지만 아내의 말을 따라주다 다 사라졌다며 절망의 도가니에 빠졌다. 거 미안하게 됐다! 여러분, 신치토세 출국장 내 상점은 대체로 6시에 문을 닫는답니다(^_^;;).

  마지막까지 웃기는 에피소드를 적립하고 한가득 짐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마냥 아쉬웠을 수도 있지만 체력이 -100까지 떨어진 우리는 약간 많이 집에 가서 행복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고, 공항버스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리니 자정이 넘었더라고. 쓰러지기 1초 전이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공항버스 타기 직전 급히 구매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이거지, 한국 라면이지... 언제부터 여행 끝났다고 라면 먹고 싶은 한국인이 되었는지 의아했다.

  탄수화물을 때려 넣고 두 뚱보는 만족스럽게 누웠다. 그날 이후 저는 4일을 앓았지만요, 이날 침대에 누울 때만 하더라도 그냥 여행의 끝에서 행복만 했답니다. 너와 나는 일본 여행이 취향에 딱 맞아서 앞으로도 종종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타쿠와 세미오타쿠의 룰루랄라 뚱보여행이었다. 돈만 많으면 오사카고 후쿠오카고 너랑 또 가고 싶다. 오키나와도!

 


 

  삿포로 여행으로 얻은 몇 가지 교훈. 1) 우리의 체력을 과신하지 말자. 특히나 짐을 많이 들고 이동하는 루트는 최소화하자. 체력 고갈되는 속도가 몇 배로 늘어난다. 2) 숙소를 좋아하는 뚱보라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성격상 숙소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 3) 돌아오는 비행기를 너무 늦은 것으로 고르지 말자. 체크아웃하고 돌아다니면 고생인데다 우리 성격 상 마지막 날 대단히 아쉬워서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집에 일찍 도착해서 쉬어야 된다. 4) 이제는... 한국 음식이 그리운 나이가 됐다(세상에). 고추장이건 볶은김치건 무시하지 말자. 참지말고 사먹자. 원기 회복이 필요하다. 5) 네가 직접 무언가를 할 시간을 주자. 내가 하면 빠르다고 끼어들면 네가 시도할 기회가 없다. 알면서 못참긴 하는데, 명심하자 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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