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045

2021.4.26. 삶의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가끔 삶에 회의가 든다.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 이유없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이 질문이 나는 싫다. 아무리 고민해봐야 어차피 답이 없을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책이건 영상이건 이에 관한 그럴듯한 답을 찾으면 잘 기억해둔다. 질문이 돌아오면 모아두었던 답을 꺼내며 나를 달랜다. 최근 가장 마음에 든 답은 리처드 도킨슨의 '생존 기계'였다. 내 삶에 이유란 없다고. 차라리 좋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인 답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알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말. 내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알 수 없으니 늘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예쁜 답. 사람은 왜 사는지 물은 어느 인터넷 글에 누군가 정성스레 달아 둔 댓글이었다. 주말 아침, 아침 먹을 동행으로 무슨 영상을 볼까 하다 샤.. 2021. 4. 26.
2021.4.20. 권태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주일에 하루는 집에만 있고 싶다. 아무 약속도 잡을 수 없다.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방을 청소하고, 평일에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다 쓴 디퓨저 병의 라벨을 떼어내는 일이나 눈에 거슬리던 옷장의 먼지를 닦는 일. 주말이라는 큰 마음의 안식처 덕에 마음 편한 평일을 보낸다. 작은 일을 위해 종종거리지 않는 그런 날들. 하지만 쉬는 날이 이틀이면 곤란하다. 하루는 휴식이지만 이틀은 침잠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있는 기분이 든다. 날씨가 좋으면 더더욱. 지난 데이트는 준비했던 활동이 어그러져서 마치 그저 집에서 쉬는 것과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하루는 원래대로 쉬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회사에서 머리라곤 쓰지 않아도 되는 단순 반복을 한 지 3주째다. 초등.. 2021. 4. 20.
2021.4.17. 부족은 상대적이고 나는 절대적으로 나를 믿어야 한다 올해도 고과의 계절이 돌아왔다. 예상했던 등급을 받았다. 조직에서 나의 입지는 이것이구나 하며 순응하였다. 이렇게 몇십 년쯤 살다 보면 바보라 불려서 바보가 되었는지 바보여서 바보라 불리게 되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될 테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생각했다. 시키는 일은 전부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지난날의 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부당함을 되뇌다가 마음을 터 놓는 동기와 몇 마디 잡담을 했다. 다른 조직에 있는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덜컥 깨달음이 왔다. 내가 시킨 만큼 했을 때 누군가는 시킨 수준보다 더 했음을 내 입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 게임은 상대평가라는 걸 왜 자꾸 잊을까. 나는 상대적 부족을 뛰어넘고자 했나? 전혀 아니었다. 나란 사람은 이 조직 .. 2021. 4. 19.
2021.4.5. 돈 좋아요 완전 좋아요 특별한 품목을 수집하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데 큰 흥미가 없다. 취미는 아이쇼핑이던 시절도 지났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월급의 많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저축했고, 몇 년이 흐르니 이러구러 돈이 좀 모였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많지도,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적지도 않을 금액이지만 내게는 그저 딱 최선인 금액이다. 이쯤 되면 애썼다 싶을 만큼의 돈. 내가 피땀흘려 번 돈이라며 한 푼 만 나가도 뼈저리게 아까웠던 적도 있었다(피는커녕 대체로 땀도 흘리지 않았지만). 그저 저렴한 상품을 많이 쌓아두면 기분이 그득하고, 가성비를 따지며 호사스러운 여행에 혀를 차기도 했다. 투자도 그랬다. 경제라고는 아는 것도 없었거니와 원금이 조금이라도 깎이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어찌 되었건 원금을 많이 모으는 것만이 상책이.. 2021. 4. 5.
2021.4.1. 낯선 사람과 매끈하게 대화하는 법을 안다면 지난주에는 서른 번쯤 PT를 진행한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초반의 내가 너무 무뚝뚝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표정이 밝지 않아 혹시나 자신이 지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고. 평소에 말이 없는 편이지 않냐고 덧붙이는데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운동 사이 쉬는 시간에 잡다한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는 게 그분의 업무는 아니지만 굳이 정적을 메꾸려 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말이 많을수록 후회가 많아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보다 어리고 내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입장인 그가 편해서, 원치 않게 실수를 할까 걱정한다. 무심코 한 이야기가 오래 기분이 나쁠 수 있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을. 선생님과 잡담을 하다보면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21.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