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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기대를 많이 하지 말자는 마음을 정말 이루게 되길 바란건 아니었다

by 푸휴푸퓨 201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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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욕심이 많다. 욕심이 많다는 걸 깨달은 지는 몇 년 안 되었다. 하지만 깨닫고 나서 내가 살아온 태도를 되돌아보니 처음부터 계속계속 욕심이 많았더라고. 처음에는 에이~ 아니에요 식으로 넘기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척도 하지 않는다. 나는 욕심이 많아요.그래서 뭐? 남의 것을 빼앗는다거나 해를 입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냥 내가 원하는 만큼 나 스스로가 일구어 내기를 바랄 뿐. 순위 싸움이 만연한 이 시대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예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애초 목적이 남의 것을 앗아오는 것이라 발동시키는 욕심은 아니라고 변명해 본다.

 

  슬프게도 이런 태도는 나를 지치게 만든다. 본인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기준을 높히는 사람들이 바로 완벽주의자가 아니겠나. 여러모로 완벽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때 기준에 미치지 못하니 자존감은 한없이 낮았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쓸데없는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존심을 지켜야 할 때도 물론 있지만, 방어적 자존심만큼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도 잘 없는 것 같다. 성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건데, 어느 순간 나를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지.

 

  내가 만든 기준 때문에 지친 나를 깨닫고 그렇게 하지 않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마음이 많이 편해진 건 사실인지라 모든 면에서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겠다는 가당찮은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 문제는 내 기준이 높았던 시절의 관성이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많다는건데, 특히 학생들 공부 말이다.

 

  학생들이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화가 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빡이 친다. 부들부들! 아니 왜 숙제를 안해오는거야. 점수를 올리고 싶지 않은거야? 인생을 낭비하고 싶어? 공부하는 것 만이 인생을 알차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 알았고, 한국식 교육 방식을 싫어하기도 하고, 승부욕을 앞세워 스스로를 몰아세우다가는 다시 일어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거라는 것도 알면서도 순간 화가 막 난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지... 싶다.

 

  당연히 숙제를 해 올거라 기대하니까 그런거지. 숙제를 해 올 수도 있고 안 해 올 수도 있는데. 숙제 한 번 안 해 왔다고 갑자기 빡이 쳐서는 짜증을 내는 사람은 나같아도 싫어할 것 같은데 알면서도 그 순간에 화가 너무 난다. 너무 심하게 기대하지 말자, 숙제를 열심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에게 아무리 외쳐도 그건 이성이 나를 지배할 때 일뿐. 내가 빡이 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정말 미치겠다. 그렇게 결심했는데! 또!

 

  두 가지 마음이 싸워서 그렇다.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학생들인데 기대치를 낮추고 좋은 말을 많이 해 줘야지 하는 마음 하나, 내가 기대치를 낮춘다는 건 그 아이들을 (성적의 면에 있어서)포기한다는 뜻인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는 너희가 잘 되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이 하나. 불합리하고 말도 안되지만 일단 좋은 대학교를 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잘 되면 좋겠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변명을 하면서 계속 빡이 치시는 중이다. 포기가 안된다.

 

  여기까지가, 화요일까지의 나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미치도록 빡이 쳤다가 가라앉히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숙제 한 번 안해온 걸로 그렇게 짜증을 받아야 하는 건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고 화내는 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니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말이다. 처음으로 진짜 그만두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다잡고 목요일에 학원에 갔더니, 글쎄, 원장님이 휴가를 가셨네. 어디다 얘기해야 하는거야. 어이가 없어서 수업 준비를 하는데 학생이 와서는 자기 숙제 확인하시라고, 120% 해 왔다고 자랑스럽게 외치는거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물어봤지. 왜 숙제 잘 해왔어. 왜 그랬어. 하하하하. 내가 할 말이 없다. 내가 빡치는 걸 보고 미안해서든 질려서든 착한 너는 이번엔 열심히 해오려 했구나.

 

  숙제를 정말 잘 해 왔다. 인사도 잘하고 예의바른 착한 학생이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봐도 나는 이 학생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숙제를 잘 해오면 항상 신이 나던 나였는데, 다음에는 어떻게 뭘 더 나가야 할까 고민되고 그랬는데 말이다. 학생한테 물어봤다. 얼마나 하고 싶어? 이것까지만, 이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러자. 나도 피곤해. 우리 좋게좋게 가자. 그게 서로 편하고 기분도 좋지.

 

  아이들에게서 한 발 빼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기대를 낮춰야 한다는 생각을 두 달 내내 하면서도 낮추지 못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드디어 포기를 하게 됐네, 하고 순간 느끼게 됐는데 썩 기쁘지는 않았다. 어쩌지. 결국 포기가 돼 버렸어. 기대를 없애니 내 열정도 사라진 것 같다. 내가 학생들에게 애정이 떠난 것 같이 느껴져서 좀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있잖아. 내 기대는 항상 사람을 너무 몰아치고 학생들은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맞는 거야.

 

  맞는 게 항상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맞는 건 맞는 거다. 착한 아이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마인드 컨트롤이 잘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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