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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세상이 항상 나에게 호의적일 수 만은 없다

by 푸휴푸퓨 2015.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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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가 타향살이를 잠깐 하면서 세상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 이런거라는 걸 느낀 후에는 그냥 아는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는 원래 그러하거니- 하며 진리라고 뼛속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 서울은 나에게 타향이 아닌지라 집에 들어오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엄마가 있고, 가족들이 좀 일찍 모이게 되면 저녁에 삼삼오오 거실에 둘러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는 시간도 많다. 따뜻한, 내가 사랑하는 그 시간 덕분에 세상에 혼자 서 있는 느낌 대신에 사는게 별거 있나 행복하네 싶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마지막에 기분이 그지같아지고 나서 가족들에게 이야기 하고 푸념하였더라면 지금 기분이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 일이 11시 반에 일어나다보니 가족들이 전부 잠들어버렸다. 깨워서 하소연 할 순 없잖아? 역시나 혼자서 기분을 가라앉히는 건, 정확하게는 심하게 가라앉은 기분을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건 잘 되지가 않는다.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음, 그 다음에는 짜증과 분노의 그 중간, 그리고 지금은 우울하네. 아, 엄마한테 하소연하고 얘기 듣고 하고 싶다.

 

  지난주 목요일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그만 둔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죄책감이 느껴지는지, 하필 그 순간에 학생은 왜 뛰어와서 오늘도 숙제 엄청 잘 해왔다고 자랑을 하는지, 말 하자마자 후회한 감이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 내일 가야 하는데, 애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자신이 없네. 애들은 크게 신경 안 쓸 수도 있지(거의 그럴거라고 확신한다). 그래도 나는 신경이 쓰이는데, 근데 또 내일 가기 전에 새 선생 벌써 구했으니까 오늘도 안오셔도 된다고, 그러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하고 나온게 마지막이 돼 버릴 수도 있는게 또 세상 돌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서 겁이 난다. 마주치는 것도 겁나고, 못 마주치고 끝나는 것도 겁나.

 

  말도 안되는데 저것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화 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뭔가 내 주변의 기의 흐름을 쓸데없는 게으름으로 바꾸어 놓는 바람에 하늘이 화가 나서 그래 한 번 당해봐라 하고 계신 건가? 오전에는 지난주에 지원했던 일에서 최종적으로 우리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친절하고 예의바른 저리 가란 연락이 오고^^ 저녁에 과외는 한 명은 평소와 같았는데 두번째 아이가 동아리가 늦게 끝나서 오늘은 못하겠다는 거다. 그것도 뭐, 평소에 성실한 아이고 하니 다음 수업 시간까지 숙제 이거 더 해 와 하면서 신나게 넘겼다. 마침 언니랑 TV 보고 있었거든.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하면서 딱 그 다음 학생 할 시간에 맞춰 끝까지 보고는 과외하러 갔다.

 

  애가 분명히 접속을 해 있는데 들어오지를 않는거다. 뭔가 싶어서 문자도 보내고 메시지도 보내니까 들어와서 아 이제 하는구나 왜 늦게 왔어 이런 얘기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애가 자리에 안 앉아있다.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헤드폰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가 들려온다. 안 할거면 니가 가서 선생님께 직접 안 한다고 말 하라며 어머니가 사정과 다그침 그 사이 어딘가의 말을 하고 계시고 애는 그냥 단답형이다. 안한다고, 엄마가 하라고, 안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운운하는거다. 야, 그냥 앞에 와서 앉아서 이제 안할래요 하면 안되겠어? 20분도 넘게 그딴 내용의 실랑이를 듣고 앉아있으면 내 기분은 어떻게 되겠니? 결국 엄마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알겠다고 했고, 마지막까지 그래도 애한테 답을 듣고 싶어서 문자를 보냈더니 어머니가 하신게 분명한 답이 온다. 망할. 오래간만에 심한 욕이 하고 싶어졌어.

 

  공부를 좀 못하는 아이였다. 좀이 아니라 사실은 되게 많이. 그래서 나도 수업하기가 쉽지 않았고, 은근히 다른 학생으로 바뀌었으면 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나는 걸 바란 건 아니었거든. 이렇게 기분 잡치게 만들면서 끝나기를 바랄 리가 없잖아. 처음에는 그냥 아 그럼 오늘 수업은 이제 끝이네 했는데 생각할수록 화나는거다. 짜증나 이자식아. 니가 뭔데 그런 식으로 나한테 구는거냐고. 인간적으로 예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화면 상으로 만난 사람이어도 그래도 말을 섞고 했으면 기본적인 것 정도는 지켜줘야 할 것 아니야 이새끼야.

 

  마지막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하는게 얼마나 거지같은 일인지 오늘 몸소 배웠으니 내일은, 혹은 그 이후에 금방 오게 될 마지막 날에 애들한테 진심으로 말해야지. 미안하다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고.. 진심은 통하는 건데,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면 애들도 내 진심이라고 느껴줄까 모르겠다. 사람 대 사람인건데, 예의를 갖춰서 말해줘야지.... 그런건가? 오늘 이 사건으로 인해서 나한테 좋은 마무리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해 줘서 앞으로 잘 하라는 교훈인건가? 하, 진짜 그렇게 되네. 배우네 배워.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는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확실히 알겠네 이제.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게도 마지막까지 예의바르게 행동해야지. 내가 미안한 일은 미안하다고 꼭 말해야지. 피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마주서고서 최대한 노력해야지. 그 최대한이 모든 것을 무마해 줄 수 없더라도 그래도 그렇게 해야겠다. 그게 끝까지 예의를 갖추는 일이었구나. 상대방에게.

 

  엄청난 분노로 시작해서 갑자기 깨달음으로 끝난다. 의식의 흐름 엄청난데? 왠지 다시 마음이 좀 괜찮아 지는구만. 그러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건 진짜 장르 불문하고 세상만사 모든 곳에 다 적용된다니까. 최선을 다해서 나쁠 일은 하나도 없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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