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숫기가 없어서라고 변명하기에는 좀 치졸하다. 한 때 사람들은 나에게 넌 참 촌철살인에 강하다고 말해줬는데 그 때는 그 말이 좋은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핵심을 찌르지! 이러면서 말이다. 그 말이 다른 시각으로 보면 너는 남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한다라는걸 안 건 대학에 오고 나서도 한참 뒤의 이야기.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어도 자존감은 낮았던 시절에,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마음으로 지금 네 상황을 판단하면 이게 문제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시간들이 가끔 부끄럽다.
결국 난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안 좋은 걸 안 좋다고 말하기는 참 쉬운데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는 이상하게 어렵다. 이제 내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려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걸 좋다고 잘 말하는 사람이 되지도 않았어. 그냥 유야무야 방관만 하고 있었더랬다.
최근 1,2년 동안 느낀건데 칭찬은 정말 사람을 기쁘게 한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에 발린 말이어도, 듣는 사람이 입에 발린 말이란 걸 알아도 어쨌든 기뻐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사소한 한 마디에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멋지고 좋은 것에 멋지네요 좋네요라 할 수 있으면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다. 또 그렇더라고. 좋다고 말하고 나면 더 좋아지기도 하고 말이다.
근데 그게 학생들 앞에서 참 어렵다. 각자 다 개성이 있는 아이들인데, 틀에 박힌 교재 말고 좋은 것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면 다들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것만 같은 아이들인데 말이다. 오늘은 왜 숙제를 안 해왔어, 이게 해 왔다고 한 거야, 왜 아직도 이 단어 안외웠어.. 만나기 전에 항상 오늘은 노력한 것을 꼭 칭찬해 주고 타박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근데 그게 잘 안된다. 짜증은 뇌가 나를 말리기도 전에 이미 입 밖으로 나와있다. 내가 숙제 어떻게 해 오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날리가 없는데 이게 뭐야! 마음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얼굴을 보면 혹시 3학년이 돼서 배치표를 처음 받을 날 직면하게 될 그 줄세우기에 상처받을까봐, 이대로 가다가는 이 예쁜 아이들이 그렇게 될 것이 보이는게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충격을 줄여주고 싶어서 조바심이 난다. 그런데 너희는 왜 이렇게 대충 해 온 거야! 나는 순간 또 확 미치는 거다.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학생이 있다. 하고 싶어서 한다는 이야기 대신에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한다는 이야기 뿐이다. 꿈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 아이에게 왜 숙제를 안 해왔냐고 묻는게 괴롭다. 지금 너에게 꿈을 생각하고 너를 찾아갈 기회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미운 애를 만나면 슬프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너는 그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천천히 둘러보고 꿈을 찾아보라고, 그런 말을 하기에는 나도 자신이 없다. 기죽지 말라고, 풀죽지 말라고 짧게 말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칭찬을 해 주고 싶다. 고등학생들을 보면서도 예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예쁜 너희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칭찬을 할 수 있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루한 내가 무심코 너희의 날개를 밟지 않기를. 내가 하는 뾰족한 말이 착한 마음들을 찌르지 않기를.
교사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10대의 아이들은 그냥 학생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희망 하나 하나라는걸 배워가는 요즘이다. 나는 기술을 가르치는 먼저 태어난 사람 정도가 내 그릇인 것 같다. 희망을 키우는 역할을 하기엔 너무 많이 부족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인데 역시나 또 많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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