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을 팔로우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지인의 계정도 맞팔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항의하지 않는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요즘 인스타그램의 트렌드가 어떤지는 매우 핫하다는 것 외에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SNS 만큼은 그저 취미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지인과의 근황 이야기는 페이스북으로 충분하다.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자는 이 기획은 What's in my bag(your bag인가)이라는 인스타그램의 대유행 전에 구상된 거겠지? 먼저 기획했다면 기획자는 가방 안을 찍어 보이는 작금의 흐름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겠다. 어느 심리학에서는 여성에게 가방은 자궁이라면서 여자가 가방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던데 자궁인지 뭔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가방은 취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로 집착할 만해 보인다. 남녀에 상관없이.
148명의 가방 안은 굉장히 흥미롭기도, 지루하기도 했다. 진솔하게 모든 것을 보여준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보여주기 위해 평소에는 가방에 들어있지 않을 물건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어서였다. 이 기획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일이니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내 모습을 꾸며내게 된 것이 아닐까.
가방을 자신의 현재나 미래라 표현한 사람이 있는 반면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이라 단정 짓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가방은 그 주인의 시간을 담고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꿈꾸는지, 그를 위해 현재를 어떻게 보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더라고. 화려한 명품을 담은 사람, 직접 만든 물건을 세세히 설명하는 사람, 살림을 전부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 건조하게 이게 무슨 재미라고 찍은 거야 싶은 사람.. 모두 각자의 스타일이렸다! 하지만 개성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종종 등장하는 보테가베네타의 지갑이나 키티버니포니?(맞나 모르겠다)라는 파우치나 마이보틀 같은 물건을 보며 2014년 한국 유행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왜 나는 한 개도 없는 거죠.
여전히 상당히 많은 이가 책을 가지고 다녀서 좋았다. 출판계의 부흥을! 바라고 있다오! 책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중 대부분이 시간의 틈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거나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성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발견해 기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책을 읽는데 왜 지하철에는 책 읽는 사람이 별로 없나 싶기도 하다. 낙서나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도 많고 순간의 기록을 위한 노트나 다이어리도 많이 들고 다니더라. 아이패드도 많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의 힘은 소리 없이 강해 보였다.
책을 읽고 내 가방도 찍어볼까 했는데 아직 안 했다. 난 가방 안을 착착 잘 정리하고 쓰레기는 가방에 절대 안 넣는 스타일이라 뭐가 들어있는지 잘 아는데, 머릿속으로 생각해봐도 일관된 취향도 없고 뭘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봐야 되려나? 어쨌든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까닭은 역시 가방이 나를 너무 많이 보여준다고 생각해서일 테다. 타인의 가방을 본 것뿐인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같고 닮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도 같다. 가방은 집착할 가치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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