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OOO을 써 보자!

  요즘은 전혀 만화를 올리지 않지만 내가 꽤나 좋아했던 웹툰 작가-그러고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먼저 좋아했던 웹툰 작가가 아닐까?-가 연말이면 하곤 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올해의 OOO! 그러니까 그 분은 올해의 어워즈 같은걸 그림으로 그려서 올렸는데, 그걸 볼 때의 나는 아직 내 취향을 정하지 못한 때였어서 그런 식으로 정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취향이, 정확하게는 취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몹시도 부러웠었다.

  이제 20대가 절반도 남지 않은 나이가 되니 나도 그정도로 많은 분야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쓸 수 있을 만큼의 취향이 생겼다. 문득 나도 연말에 그런걸 정리하면 매년 기분이 좋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하나 하나 목록을 모아보려고. 이 글에다가 수정에 수정을 더해 목록을 더하면 연말에 상당히 풍성한 어워즈를 일궈낼 수 있을 것 같다.

 

1. 올해의 잘 산 물건

 - 핫탑! 핫탑! 핫탑! 사무실이 추운데 따뜻한 물을 계속 받을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던 차에 한 북튜버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복지몰에서 샀는데 이게 무슨 일. 영혼 저 밑에서부터 잘 샀다는 말을 끌어올리고 싶다! 따뜻한 것을 그대로 유지시켜주는 것 이상으로 나는 그냥 실온의 물을 담아 올려두면 점점 뜨끈한, 아주 핫한 온도가 된다.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었던 것 뿐인데 커피를 계속 마실 순 없으니 차를 마시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차를 하루종일 마시니 다른 무엇보다 피부가! 피부가 엄청 좋아졌다. 차를 끊으면 다시 나빠지는 것마져 느껴져! 따뜻해서 기분 좋고 피부도 좋아지고... 세상에 나에게 이렇게 좋은 습관을 안겨준 핫탑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겨울이 와서 반가운 이유! 핫탑을 쓸 수 있다는 거!

 - 만년필! LAMY 사파리 만년필을 사서 얼마나 신나게 썼는지. 부드럽게 물같이 써지는 덕에 노랑이 이후로 2017년 에디션도 샀다. 하필 그렇게 만년필에 빠져있을 때 알라딘 9월 사은품이 HEXA 만년필인건 뭐람. 열심히 5만원을 맞춰서 날아온 포인트 4000원짜리 만년필은 가볍고, 적당히 얇고, 적당히 서걱거려서 아주 마아아아아안족 스럽다. 특히 아트박스에서 산 말도안되는 만년필 용의 잉크와 카트리지 호환이 되어서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아트박스 만년필용 잉크를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게 해줘 너무 행복하다. 카쿠노 만년필도 필기감이 너무 좋아... 교토 angers에서 만원짜리 플래티넘 만년필을 사오지 않은 것이 눈앞에 좀 아른거린다. 만년필 정말 두고두고 잘 쓸 것 같은 생각... 우후훗!

 

2. 올해의 잘 한 일

 - 단연코 이직. 이직을 꼽지 않을 수가 없잖아..! 전주를 탈출해서 서울로 온 것이 이렇게나 나의 삶의 질을 크게 바꿀 줄 몰랐다. 예상보다 너무 많이 올라가서 행복감에 벅차오르는 수준이야. 주말마다 한도 끝도 없이 기분이 다운되던 일도 이제 전혀 없고, 두통이 몰려와서 진통제를 먹는 일도 정말 현저하게 줄었다. 그뿐인가? 드디어 정말로 퇴근 후에 무언가를 할 체력이 남는 상황이 와서 운동도 하고 있고 약속도 잡아 돌아다니지. 평일 저녁에 뭐든 할 수 있고, 회사 외에 내 삶이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는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가족들과 다시 같이 사는 것도 정말 좋아. 집에 가면 말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좋고, 엄마가 해주는 모든 일이 나를 얼마나 편안하게 해주는 일인지도 이제 뼈저리게 안다. 또 제일 중요한 부분은 일이 바뀐거다. 회사를 바꾼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예전 직장보다 1000배는 나은 지금의 부서에서 나는 엄청나게 행복하다. 진심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 노력한 과거의 내가 너무나 고맙다. 

 

3. 올 해의 사람

 - JH. 내 남자친구. 너를 만나서 내 일상이 얼마나 의미있게 변했는지, 얼마나 자주 행복한지 몰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혹시나 닳을까 아플까 걱정되는게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게 해 주는 너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평화롭더라도 시간이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공허했는데, 지금은 너와 더 깊어진다는 생각만으로 시간 그 자체의 의미가 가득해. 최선을 다해서 아껴줄게.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4. 올 해의 어플

 - 독서 다이어리. 사실 올해부터 쓰기 시작한 건 아니고 작년 11월에 깔았지만 올해 훨씬 더 길게 이용했으니까 올 해의 어플로 꼽을만 하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열심히 도도도도 타자를 쳐서 적어두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둘 수도 있다. 어디까지 읽었는지도 표시할 수 있고 별점도 매길 수 있지! 분야별로 책장이 정리되어 있어서 어느 분야에서 무얼 읽었는지 찾아보기도 좋다. 하나 바라는건 컴퓨터와의 연동이 되는 것인데 훔... 너무 단순한 어플이라서 그렇게까지 개발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게 작은 아쉬움.

 

5. 올 해의 목표 달성

: 나는 매년 목표를 세우는데, 올해이 목표는 7가지였다.

 1) 1달에 택시 6번 이하로 타자. 화장품 관련해서 한달에 4만원 이하로 쓰자. → 성공!과 실패..

  택시는 나 스스로에게 습관 성형을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전주에서는 정말 자주 택시를 탔었다. 그때는 돈을 별로 다양하게 쓸 일이 없었는지 그렇게 택시비를 내고도 용돈이 괜찮았나봐. 서울에 와서는 택시를 타면 오히려 출퇴근이 더 늦어서 아예 포기했더니만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타지 않는다. 기분이 엄청 좋아!

  화장품은 이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건 1) 네일아트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2) 한 달에 내가 소진하는 화장품의 양을 생각하면 4만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쓰니까 화장에도 돈이 꽤나 드는구나 싶네? 화장품을 아껴써야겠고, 네일아트는 어지간해서는 참아봐야겠다.

 2) 과학/경제분야 도서를 한 달에 각 1권 이상 읽고, 독서 기록표를 쓰자. → 성공!과 실패..

  과학은 실패했고 경제는 성공했다. 경제도 사실 간신히 따라붙었다. 유수진씨 덕분에 막바지에 세 권이나 읽었지. 내년에는 독서 관련된 목표를 넣지 않았는데, 우선은 경제공부는 꼭 책이 아니어도 계속 할 생각이라 넣을 필요가 없었다. 과학은 경제 공부때문에 좀 더 미뤄뒀지 뭐. 한 번에 두 가지를 모두 공부할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에서 내년에는 경제를 선택했다. 화이팅!

 3) 전화영어 혹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영어 공부를 1회 이상 수행하자. → 실패..

  이건 뭐 그냥 안한거지 뭐. 일본어를 그만두고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오로지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다. 내년에는 해야할텐데, 이건 또 내년 목표로 추가되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는 언어를 잃는다는건 큰 자산을 잃는다는 거잖아. 힘을 내서 시작을 해보기는 해야겠다. 근데 힘을 언제 낼런지 신년이 목전에 와 있는 지금도 알 수 없긴 하다(ㅎㅎㅎ).

 4) 일본어 초-중급까지 공부해 보자. → 실패..

  사실적으로 일본어 공부는 실패다. 학원을 두 달 정도는 열심히 다녔지만 기억에 남는게 없어서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열심히 공부해서 10월 일본 여행 때 조금이나마 말을 알아듣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하다보니 지겨워서(^^;) 욕심이고 뭐고 그냥 흐지부지되었다. 토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고, 평일에 이틀씩이나 8시부터 두시간씩 듣는 것도 원치 않았어. 그냥 공부가 하고싶지 않았다고 해라! 그래서 그냥... 그냥 그렇게 되었다... 나자신... 내게 남은건 일본어 교재 네 권과 일본어 단어책 하나.. 그것만 해도 오만원은 훌쩍 넘는다... 

 5) 업무에 자만하지 말고, 태도를 조심하고, 초심을 유지하자. → 성공도 실패도 아니다?

  이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어서 말이다. 뭐 이러구러 나쁘지 않았다고 적당히 생각해 본다. 내년에 제발 부서 이동이 없었으면 좋겠다.

 6) 여행을 다니고 2회 이상 여행 일기를 쓰자. → 성공!

  공교롭게도 두 번의 여행 모두 일본이었다. 1월 말에 후쿠오카와 유후인을 다녀왔고, 10월에는 교토를 다녀왔다. 두 여행 모두 꽤 만족스럽고 행복한 여행이었고, 두 번 모두 tripful이라는 가이드북을 참고했다. 다음 일본 여행은 언제일까 누가 묻는다면 좀 머뭇거릴 것이 이제 약간 건강이 걱정되기도 해서. 끙, 내년엔 국내 여행으로 한정지었다. 3년 정도는 해외여행은 가지 않고 대신에 못가본 국내 여행을 좀 돌아보려 한다. 북스테이에 가봐야지!

 7) 좋아하는 운동을 만들고, 3개월 이상 참여하자(된다면 한 달에 1kg씩 감량하자). → 성공!

   학교에서 하는 건강 강좌 수업을 2학기 참여했다. 8월 말에 끝나고 나서는 바로 요가 학원에 등록해서 다니는데, 스트레칭이 쭉쭉 되는 것이 아주 만족스럽다. 3개월이 목표였는데 그것보다는 훠얼씬 많이 하고 있어서 9월이지만 성공이라고 쓴다! 다만 한 달에 1kg씩 감량이 잘 된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성분이 변화하고 있고 또 3kg 이상이 안정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연말까지 조금 더 뺄 수 있으면 좋겠다(지금까지는 현재 직장에 와서 찐 살을 뺐고, 지금부터 몇 6kg 가량은 지난번 직장에서 1년 반동안 차곡차곡 찌운 살이다). 

 

6. 올 해의 영화

 - 서치.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 나도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존 조가 할리우드에서 얼마나 작은 동양인 역할을 많이 했는지 알고 있잖아? 그가 주연을 했다기에 오오 노력 많이 했구나 싶기는 했지만 영화 자체는 규모가 적고 그런 영화가 아닐까 했다. 그런데... 그런데! 진심으로 새로운 구성과 요즘 시대를 잘 반영한 내용, 적당히 긴장감 있는 서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두 번 볼 것같은 영화는 아니지만(신선함!이 가장 큰 매력이었기 때문에 이미 알게 된 이상 그 매력은 좀 떨어지니까) 한 번 봤을 때 정말로 감탄한, 이런 발상을 해낸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동양인 주연의 영화가 이렇게 인기가 있다는게, 게다가 한국계라는 설정까지도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고!

 - 타샤 튜더. 영화 자체는 전혀 베스트가 아니었다. 타샤가 90세가 넘은 상황에서 찍은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윈슬로가 장성해서 부인이 있더라!) 내가 아는 타샤의 활동 범위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활동만을 하고 있었다. 힘들어보이고, 쉬셨으면 좋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은 내가 타샤 튜더를 정말로 좋아했으니까. 그 지루한 단조로운 내용도 자꾸 기억이 난다.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은 항상 존경스럽다. 

 - 스타이즈본(A star is born). 어떻게 진행될지 대략 예상이 되는데 딱 그렇게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영화. 레이디가가야 원래 워낙 노래를 잘했다 치고, 브래들리 쿠퍼는 왜 그렇게 잘 부르는지 모르겠다. JH랑 영화보면서 처음으로 울었던 영화기도 하다.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도 너무나 슬프게 만든다. 세상에는 마음이 아파도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아마 앞으로 OST를 들으면서 자주 생각할 것 같은 영화. 

 - (The very best one!) 패터슨. 주인공 패터슨처럼 살 수만 있다면야. 사랑하는 사람과 적당히 좋아하는 직업과 몰두할 취미가 있는 평탄한 삶. 내가 원하는 삶이 내내 그려지는 그런 영화였다. 좀 더 길었다면 긴 만큼 즐기면서 봤을 것이다. 행복해. 사랑해. 감각은 깨어있게 할게. 소소한 꿈도 잃지 않을게.

 

7. 올 해의 건강식품

 - 프로폴리스. 콧물이 멎은게 완전히 프로폴리스 덕분인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정도라서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콧물을 줄줄 흘려대며 1분에 한 번씩 사무실에서 코를 풀었다. 코피나고 코 안에 딱지 생기고 정말 말도 못했는데 프로폴리스를 먹은 그날부터 멈췄어. 멈췄어!!! 따뜻한 차도 2인용 방석도 패딩 조끼도 담요 3개도 못해낸 것을 프로폴리스가 해냈다. 사랑합니다. 장기복용할게요. 건강식품은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