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인터넷에서 참가한 행사에서 무료로 필사 책을 받았다. 국내 여러 시인의 시를 김용택 시인이 엮었다. 신이 나서 하나 둘 따라 쓰고 있다. 첫 시인은 윤동주다.
‘못 자는 밤’을 눈으로 읽은 적은 많지만 손으로 써보기는 처음이다. 하나 둘 숫자를 세는 사이사이 쉼표를 적는다. 쉼표 하나를 그리는 손의 감각으로 하룻밤이 넘어가는 시간을 느낀다. 작가는 점을 몇 개나 찍었을까. 점 하나의 하룻밤과 점 하나의 이틀밤이었으려나. 읽기만 할 때는 참 짧은 시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르다.
‘참회록’을 받아 적다가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년 일 개월을... 만 이십 사년...? 네? 스물 넷의 나이로 참회를 하고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이가 되었다니 성숙도 하지. 나의 이십 사년을 돌아본다. 정확히는 이십 팔년을 돌아봐야 한다. 이십 사년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나를 후려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를 두고 아빠는 젊은 나이에 죽어서 그런 것이라 했다. 나이가 찰수록 공감 가는 이야기다. 윤동주가 60살까지라도 살았더라면 다른 마음을 더 지어 냈을까. 문득 초로의 할아버지가 된 사진 속 백석의 얼굴을 생각했다. 모던보이 백석이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그는 지난한 시간을 거쳤다 했다. 공산주의를 찬미하는 몇 안 되는 백석의 시는 오히려 애처로웠다.
영원한 젊은이로 남은 윤동주의 삶이 영롱한 빛을 낸다. 시를 짓던 윤동주보다 어느새 나이가 더 많이 들었다. 마흔과 쉰의 내가 윤동주의 부끄러움을 조우했을 때 부디 공감할 수 있기를, 자조만 하지는 않기를 바라본다.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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