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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19.4.25. 나와 싸우기

by 푸휴푸퓨 2019.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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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의 목적은 건강한 나를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54일에 사촌 언니의 결혼식이 있다. 사촌으로서 적절한 결혼식 하객 복장을 갖추는 건 기본적인 예의 이지마는 매일 캐주얼로 출근하는 나는 그것이 좀 어렵다. 정갈한 정장이 딱 하나 있는데 그 언니의 오빠가 결혼하던 때 이미 입었다. 다시 입을 순 없겠어서 여러 쇼핑몰을 전전하던 중 몇 년에 한 번 입을 정장을 사기가 영 아까워졌다.

 

  옷장을 억지로 뒤져서 무난한 셔츠 원피스를 찾아냈다.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한 하늘색 옷이다. 작년 초에 발표 할 때 입으려 사 둔 옷인데 허리에 띠도 있고 멀리서 가는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지.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작년의 나는 이 옷을 겨우 입었다는 거였다. 운동을 좀 했다는 올해의 나도 가슴이 꽉 꼈다. 정말 꽈악.

 

  그래도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이 꽤 남았으니 5월이면 여유 있게 입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어제, 그러니까 처음 옷을 찾은 후 약 3주가 지나고 난 424일에 옷을 다시 입어보았다. , 이게 아닌데. 나아지긴 했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전신 거울을 앞뒤로 살피며 내 몸이 옷 안에서 얼마나 커다란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옷태도 내 몸의 모양새도 너무 밉다. 마지막 1주일만 필살 식단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기간을 좀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복장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는데 마땅치가 않았다. 어제 갑자기 날씨가 좀 더워진 듯도 하고, 이제 좀 얇은 원피스를 꺼내볼까 싶었다. 마침 또 운동을 했으니까 작년보다 낫게 입겠거니 했다. 근데 왜 또, 이게 아닐까. 가슴이 꽉 끼는 옷을 걸친 내가 하마 같아 보였다. 그냥 출근하려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시 벗어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대체 뭘 그렇게 먹었는지 운동을 해도 하나도 달라지는 게 없다. 그전에 이 지경으로 살이 찔 때까지 왜 가만히 있었는지도 한심하다. 거울 속의 내 가슴둘레가 점점 더 커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런 몸으로 잘도 돌아다녔다. 우울해진 기분으로 출근길을 나서니 남자친구와의 아침 통화 중에도 볼멘소리를 하게 된다. 얘는 왜 이렇게 못생긴 나랑 사귈까. 네가 예쁘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인 것 같아. 다른 여자가 없어서 지금 그냥 나랑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대체 왜 이 모양일까.

 

  끝을 모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서 동기와 수다를 떨었다. 요즘 무슨 책이 재밌다, 그 작가 만나보고 싶다, 글쓰기가 배우고 싶다 어쩌구저쩌구. 문득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수업을 수강하는 어떤 이의 글을 읽다가 탈코르셋 관련 영상을 올린 사람의 링크를 발견했다. 꽤 살집이 있어 보이는 얼굴에 공감이 가서 영상을 클릭했다.

 

  몇 개의 관련 영상까지 보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오늘의 우울의 원인이 뭐였더라.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싶어서 애쓰고 있었다. 잘 맞지 않는 모양을 보니 옷이 아니라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몸에 맞는 옷을 갖추지 못한 나를 비난했다. 내가 못나 보이니 나를 사랑해주는 이마저 이상해 보였다. 이럴 바에는 자주 그랬듯 몸을 외면하면 될 텐데 대체 왜 땀 흘리며 운동하나 절망스러웠다. 자주 몸을 외면했다는 사실에 또 괴로운 마음이 든다. 옷이 맞지 않는다, 노력이 헛되었다, 어차피 같은 결과인데 노력이 하찮다, 노력을 하찮게 여기는 내가 싫다.

 

  근육통을 기쁘게 느낀 날의 나의 목적은 무엇이었더라. 나는 건강해지고 싶었다. 가장 기본이라 생각한 목표는 ‘2년 후의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소견을 듣지 않겠다!’였다. 무거운 무게를 들어도 떨지 않는 다리의 힘,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던 복근의 존재를 드디어 느낀 레그 레이즈의 한 순간. 목적에 맞는 기쁨을 느낄 때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목적을 잃어버린 순간 모든 기쁨은 무용해졌다.

 

  그래서 또 나는, 나를 다시 부여잡고 이야기한다. 네가 원래 바라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다른 사람의 눈에 예뻐 보일 옷을 입고 싶었던 건지, 속에서 차오르는 체력을 바라던 건지 말이다. 나는 이제 한 바퀴를 간신히 뛰던 운동장을 두 바퀴 뛸 수 있다. 억겁의 시간 같았던 운동 한 시간 반이 그래도 좀 더 빨리 지나가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옷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가 알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자존감을 공격받는데 가장 센 공격자가 나라는 게 자주 슬프다. 나를 이기기 위해서 계속 생각한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나로써 완전하다. 예쁘건 아니건 외모는 내 가치를 규정하지 않는다. 모든 날에 의미 있는 말이 아닐지라도 억지로나마, 억지로나마 반복해 본다. 부디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더 행복하기를.

 

 

 

최리 :: Finding, Myself. https://www.youtube.com/watch?v=tS7qyUK0WAc

배리나 :: 예쁘지 않아도 괜찮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zrRPEBmP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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