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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아빠의 어머니와 엄마의 시어머니와 나의 할머니에 대하여, 시작.

by 푸휴푸퓨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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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씁쓸한 기분을 누르게 된 지도 2년은 되었다. 부산은 내게 지루하고 답답한 할머니의 집이다. 나는 할머니를 뵈러 가는 용건 외에는 부산에 놀러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았던 부산 방문이 아무래도 조만간 끝이 나리란 예감이 자꾸 든다. 할머니에게서 처음 치매가 시작되던 때의 외할머니 모습을 발견한다.

 

  외할머니와 제대로 된 마지막 대화는 내가 준비하지 못했을 때 찾아왔다. 정신이 길을 잃어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시던 외할머니와 단 둘이 풍경을 구경하던 때였다. 그저 응응, 하며 아무 말에나 대답하고 있는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나에게 늘 묻던 질문을 했다. “이렇게 잘 커서 사돈어른이 보시고 좋아하시지?” 외할머니의 손주 중 사돈어른의 손에 큰 아기는 나뿐이었다. 외할머니가 내게만 물어봐 주는 전용 질문에 나는 늘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던 분이 어떻게 이 질문을 하시는지 너무나 당황해서 눈만 깜빡였다. 늘 하던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외할머니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금방 외할머니의 정신은 외할머니만의 세계로 돌아갔다.

 

  며칠 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다가 나는 문득 그 대화가 내가 외할머니와 나눌 수 있는 마지막 대화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알던 외할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사실 이제까지 그 질문을 하신 건 정말 사돈어른의 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 컸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마지막 칭찬에 웃으며 대답할 기회를 내가 놓쳐버렸어. 더 이상 외할머니와 인사할 기회는 없어. 뒤늦게 밀려오는 큰 슬픔에 나는 길을 걸으며 펑펑 울었다.

 

  친할머니는 자꾸 외할머니를 닮아간다. 또다시 쇠약해진 할머니의 몸과 정신을 확인하고 돌아오며 나는 문득 할머니와의 작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울지 않으려면,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할머니를 잘 보내려면, 이번에도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크게 많이 아플 것 같아 겁이 나니까. 그래서 이 글을 시작한다. 고통스럽겠지만, 당신을 그냥 떠나보내는 것보다는 편할 것이다.

 

 

 

프롤로그

 

1. 아빠의 어머니

- 속옷을 다려 입히는 어머니

- 차가운 어머니 안타까운 어머니

- 짐을 가득 짊어진 아빠

 

2. 엄마의 시어머니

- 일할 사람 여기 있다는 시어머니

- 갑자기 고맙다는 시어머니

- 애정도 미움도 없어진 엄마

 

3. 나의 할머니

- 마지막으로 키운 아기가 나였던 할머니

- 나만 보면 늘 애가 타는 할머니

- 할머니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나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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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이렇게는 쓸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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