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0.6.12. 늦게사 전하는 고마웠다는 말

by 푸휴푸퓨 2020. 6. 12.
728x90
반응형

 

  언니가 결혼 날짜를 잡았다. 아직 서로 부모님을 뵙지도 않았지만 코로나로 혹시 내년 예식장이 북새통일까 걱정해 식장만 미리 잡았다. 어차피 양가 부모님이 반대하실 이유도 없어 선선히 모두 허락하셨다. 

 

 

   순서는 조금 뒤바뀌었지만 조만간 형부 될 분이 집으로 인사를 올 예정이다. 오는 사람도 떨리겠지만 기다리는 사람도 떨리는 일인지라 인사하는 날 어찌해야 할 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체로 우리의 체통(?)을 유지하자는 내용이다. 웃음소리와 목소리를 줄이자(처음부터 놀라게 하면 안 된다),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앉을 거다(말하다 보니 최소 세 명이 쭉 뻗을 심산이었던 것이 드러나서 그럼 사위도 뻗으라 하자는 쿨 결론) 등의 제안이 나온다. 몰라, 나는 체통이 없어!

   이야기 도중 아빠는 엄마에게 사위 앞에서 장모님의 인자하고도 조용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읭? 이 무슨 옛날 사고방식이냐 말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외할머니와의 추억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아빠가 회상하는 외할머니는 정말 좋은 장모님이었다.

  나이가 들면 외할머니같은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로 외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항상 아빠 앞에서 소녀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은 강한 어머니여서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긴 딸 내외가 매일 저녁까지 얻어먹고 늦게 돌아가도 다음날이면 출근하는 딸을 위해 딸이 버스를 타는 정류장까지 새벽같이 아이를 데리러 와 주시는 분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뒤에서 험담을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분이셨다. 겸손한 태도로.

  그런 할머니는 우리 식구가 외가에 놀러가면 자기 전 언니와 내가 자는 방에 찾아와 수다 떨기를 참 좋아하셨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 이야기를 쿵짝을 맞춰가며 듣다 보면 금방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겼다. 눈이 절로 감기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할머니는 아쉬워하며 주무시러 가시곤 했지. 누가 누구와 결혼했다거나 하는 이야기 속에 할머니는 딱 한 번 아빠에 대한 마음을 나에게만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날 할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 올곧게 자라 가정에 헌신적인 아빠를 칭찬했다.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데 정말 바르게 잘 자랐다고. 나는 할머니가 꺼낸 아빠의 이야기에 응응 우리 아빠가 그렇지, 좋은 아빠지 하며 넘어갔지만 그 칭찬을 듣고서야 아빠의 성장환경이 잘 크기 쉽지 않은 환경임을 처음 자각했다. 폭력과 외도를 일삼았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하게 살던 오 남매 중 유일하게 서울로 유학 온 자식. 바르게 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공부는 열심히 했을까. 서울에 와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좋은 아빠를 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됐을까.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집에 결혼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나서야 나는 겨우 외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할머니는 가난한 시댁의 실질적인 가장같은 아들에게 시집가겠다는 딸을 어떻게 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말리지 않은 결혼을 한 딸이 시댁의 어려움을 돕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사위에게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을 수 있지. 알고 보니 어른들은 왜 이렇게 다 어른스러웠느냔 말이다.

  외할머니는 우리가 댁에 놀러가면 늘 응- 왔냐, 하고 우리를 맞아주셨다. 자리에 누운 할머니가 다시 보여주지 못할 반가움이 너무 그립다. 내가 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크기도 전에 스러져가는 사람들에게 들리지도 않을 내 마음을 전한다.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마웠어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