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0.6.29. 글이라도 써야 괜찮은 척이 될 것 같아서.

by 푸휴푸퓨 2020. 6. 29.
728x90
반응형

  또 승진에서 떨어졌다. 특출나게 한 일이 없으니 승진하지 못해서 억울해할 자격은 없다. 그냥 그렇다. 한 번 밀리면 영원히 밀려버리리란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럽게 자꾸 떠오르지만, 어떻게든 눌러본다. 물론 잘 되지 않는다.

 

Photo by  Axel Antas-Bergkvist  on  Unsplash

 

  주말이 너무 힘겨웠다. 부산에 다녀오는 일도, 언니의 웨딩박람회를 동행한 일도, 젊은 할머니의 꿈도 모두 버거웠다. 할머니는 산자락에 있을까 기장에 있을까 제사상 앞에 놀러왔을까. 부산에 가자마자 할머니가 뿌려진 산을 찾았다. 조용하고 좋은 곳이었다. 아직 팔리지 않은 집에도 갔다. 짐이 모두 빠진 할머니 집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컸다. 할머니가 오래도록 걸어놓았던 거실 그림이 윗부분만 찢겨 남은 채로 걸려있었다. 남은 게 하늘인 건 알겠는데 그 아래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눈 쌓인 산이었던가.

  큰집의 냉장고에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몇 장 붙어있었다. 어린 큰아버지가 있어 붙여놓은 사진이겠지. 제사에는 별 열의가 생기지 않았다. 글쎄, 할머니가 정말로 행복하려면 이 제사상 앞으로 오는게 아니라 멀리 우주 건너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친척들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엄마는 그게 제사의 목적이라 했다.

  서울에 와서는 언니를 위해 웨딩박람회에 갔다. 결혼은 거대한 시장이어서 모두가 새 계약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던 언니는 나보다도 더 탈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호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결혼식을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더 굳어졌다. 미칠 듯이 피곤해서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젊은 할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보아서 그랬는지 꿈에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할머니가 나왔다. 친척들이 다 나왔는데 할머니만 젊었다. 그래도 모두들 할머니인줄 알았다. 할머니는 잠시 머물렀다 금방 떠났다. 마지막으로 나와 인사를 하는데 현관 앞에 앉은 할머니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나도 곧 갈테니 같이 가주겠느냐고 했다. 젊은 할머니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하나 보다고 생각해서 그럼 먼저 가시라고, 나중에 좋은 곳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할머니가 이 말에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뭐가 이상한가 고민을 했다. 

  결국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잠에서 깼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고 힘들지도 않은 젊은 시절의 모습이 되어 행복하길 바랐다. 그랬더니 그런 모습으로 와주었지 뭐야. 할머니는 생전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호박이라 했다며, 항상 자신이 못생겼다고 말했다. 어제 보니 아니었는데.

  부산에 다녀오자마자 박람회를 들르는 일정은 내 체력에 과도했다. 꿈까지 꾸느라 잠을 설쳤더니 월요일부터 아무 기운이 없었다. 오전부터 골골대다 내일의 연차를 냈다. 인사 문서가 나오고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던 꽃바구니의 멘트를 고민하자며 그룹메신저방이 열렸다. 어쩌라고. 당장 꽃을 사 오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제어할 수 없게 눈물이 흘러서 당황했다. 추태가 따로 없었다. 파티션 뒤에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승진 인사에 대해 알고 낸 연차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다행이었다. 내일 누군가를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있거나 축하 물품을 사러 뛰지 않아도 되니까.

  내일 잘 쉬고 돌아오면 기운을 회복하겠지.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그것을 생각하지 않아 지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어. 내 역량은 여기까지고, 그것을 알아 승진을 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힘내라거나 미안하다는 동기의 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컴컴한 동굴에 들어가 내키는 만큼 나오지 않고 싶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