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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MINIMAL LIFE

물건 버리기 100일 챌린지 3: 그래서 새로 뭘 사고 싶다고?

by 푸휴푸퓨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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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두 편의 글에 밝힌 바와 같이 정리 후 비워진 방은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든다. 이 상태가 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되었는데 어지를 일 없이 한결같이 쾌적하게 유지되고 있다(사실 지난주에도 책 한 박스를 팔았다!). 그렇지만 물건을 비우는 과정이 내내 순탄하지는 않았지. 이번에는 고비를 넘겼던 이야기다. 

  어느 순간 방에서 더 정리할 물건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버리기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루 1개 버리기 챌린지였지만 하루에도 몇 개씩 칸을 채웠던 터라, 80여 개의 목록을 완성할 즈음에는 버리는 물건의 개수에 심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본질은 잊어버리고서 미련이 한참 남은 물건을 억지로 떼어내려니 괴로웠다. 마음이 축축 처졌다.

  때로는 문제를 멀리서 봐야 잘 해결된다. 시선을 방에서 집으로 돌렸다. 내 방을 지나 안방, 언니 방, 베란다와 신발장, 컴퓨터방까지 물건은 어디에나 가득이었다. 내 방을 처음 정리한 순간처럼 다른 방을 치웠다. 부모님의 30년 묵은 옷을 꺼내고, 언니의 대학 시절 교재를 정리했다. 정리하겠다고 사놓은 플라스틱 바구니가 수도 없었는데 그게 오히려 짐이 되고 있었다. 엄마가 시집올 때 사 와서 베란다에 방치됐던 거실장을 꺼낼 때는 10년 묵은 먼지가 날려 온 몸이 새카매졌다. 8월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의 성화에 못이겨 함께 물건을 치우던 가족들은 점차 태도가 변했다. 엄마는 할인 금액을 위해 공산품을 사들이는 습관을 고쳤고, 언니는 일단 옷장에 넣어두는 버릇을 놓았다. 편리함을 몸소 느끼니 변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내가 손대지 않아도 직접 정리하는 물건들이 점차 많아졌다.

  온 집안이 한 차례 비워지고 나자 엄마는 내게 원하는 가구를 사서 방을 바꿔도 좋다고 했다. 이제까지는 혹시나 시집이나 가면 사뒀던 가구가 아까울 거라 생각해 반대했다고(엄마가 나의 결혼 가능성을 낮게 점치게 되었나).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나는 방에 비해 너무 크다고 생각했던 옷장을 절반 크기로 바꾸겠다며 들떴다. 새 옷장을 산다고 생각하니 마지막 남은 미련 한 줌을 놓기가 어렵지 않았다. 신속하고 빠르게 마저 물건을 비웠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억지로 이별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새 옷장과 새 시대를 맞이합시다!

  물건도 비웠겠다 옷장을 사려고 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MDF는 싫은데, 조악한 건 싫은데, 어쩌고저쩌고 하다 보니 사고 싶은 옷장의 가격이 80만 원을 넘었다. 그 정도야 쓸 수 있지! 씩씩하게 물건을 직접 보러 매장까지 다녀왔다. 정말 결제하기 딱 직전이었다. 그랬는데, 결제하지 않았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행동의 결과가 80만 원짜리 소비인 게 맞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정말 원했던 게 이거였어? 가뿐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연중 가장 큰 소비를 하려고 했다. 도돌이표같은 소비를 하려던 건 절대 아니었단 말이다. 결국 나는 원래 있던 옷장 내부 구조를 바꿔 쓰기로 했다. 찾던 옷장이 눈앞에 있었는데 그걸 내쳐버리려 했던 거야. 비워진 옷장 반쪽을 다른 방으로 옮기기 위해 온 가족이 정말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반쪽만 남은 옷장은 예쁘게 구성해서 내게 딱 맞춤하게 쓰고 있다. 좋은 옷장이란 말이지.

 

왼쪽은 원피스와 상의, 오른쪽은 바지와 치마를 둔다. 왼쪽 하단 서랍에는 잠옷이나 양말, 스카프 등이 있고 오른쪽 하단에는 가방과 다른 계절 옷이 있다. 왼쪽 하단 서랍을 조금 더 작은 크기로 샀어도 되었을텐데 아쉽다. 가장 아래 서랍에는 (항상 있지 않으면 운동에 큰 지장을 주는) 운동복을 대접하며 모셔두었다. 문에는 거울을 붙였다. 

 

물건이 우리의 집 안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히고, 시간을 훔쳐가고, 지갑을 홀쭉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물건은 의미 있는 목적에 보탬이 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물건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태미 스트로벨, 행복의 가격 中

 

    옷장 소동을 겪으며 나는 미니멀리즘이나 미니멀라이프가 단순히 물건 수를 줄이는 데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소유한 물건도 충분히 잘 써주는 것, 사용에 기뻐하고 충분히 충족되는 것까지도 미니멀 라이프의 일부다. 교과서 같은 말을 이렇게 뼈저리게 배웠다. 나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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