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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MINIMAL LIFE

물건 버리기 100일 챌린지 4: 심플하게 살아가는 풍요로움에 대하여

by 푸휴푸퓨 2020.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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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살아가는 풍요로움: 이나가키 에미코,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발췌

읽었던 많은 책 중 몇 권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처음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유품 정리 때문이었다. 소유자가 사라지자 처분하기 애매한 물건이 가득 생겼다. 그나마도 자식이 많아 힘이 모였지만 혹여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내 짐을 치워줄 사람은 없을 테다. 누군지 모를 남은 사람이 써야 할 시간과 노력이 미안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가치는 대부분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여행길에서 산 기념품, 몇 번이나 읽은 책, 소중한 사람에게 받은 편지와 추억의 사진 등은 그 물건을 손에 넣게 된 과정이나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한 대가, 물건에 얽힌 사연에 대한 기억이 물건의 가치를 실제 이상으로 높인다. 따라서 물건은 기억해주는 주인을 잃을 때 가치도 함께 잃는다. (중략)
 상당히 많은 물건을 처분하고서 깨달았다. 이제 만에 하나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남에게 폐를 끼칠 일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심란하고 슬픈 상상이긴 하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자유'였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사사키 후미오

 

  그때까지 나는 온갖 취미와 관련된 물건이 한가득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하고 싶을 수 있는데, 악기를 배워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화장품도 마찬가지였다. 화장품을 소유한 나는 화장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민낯을 선택한 상태라면 화장품이 없는 나는 그냥 화장을 못하는 사람인 양 싶었다. 아래의 구절을 읽고 겨우 깨달았다. 나는 왜 굳이 나를 다른 이에게 증명하려 하는가. 밖이 아니라 안을 관찰해야 하는데.

 내가 잘 쓰지도 않는 쓸데없는 물건에 집착했던 건 그 물건과 관련된 내 정체성, 즉 나 스스로가 인식하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나는 글을 쓰고, 뜨개질도 하고, 엉뚱한 공상에 빠져 낙서도 하고, 스키도 타고, 도보여행도 하고, 그 밖에도 이런저런 일을 즐긴다. 그래서 고급 스키장비 같은 멋진 소유물이 내 개성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제 스키를 거의 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스키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혹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하려고 물건을 쌓아 놓는다면 건강, 행복, 인간관계처럼 당장의 내 삶에서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든 그만큼 방해가 될 뿐이다.

행복의 가격 - 태미 스트로벨

 

  나를 증명할 물건을 줄인다는 생각을 하자 순식간에 홀가분함에 빠져들었다. 미니멀, 미니멀! 무엇이든 미니멀이란 말이면 해결이 돼서 모든 물건이 처분 대상이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이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우자! 멀쩡한 물건도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면 속이 시원하니 미련이란 이름을 달고 내던졌다. 하지만 쓰레기의 무게만큼 점점 죄책감도 무거워졌다. 가진 것을 죄스럽지 않게 충분히 잘 쓰는 일도 중요하구나. 버리기보다 쓰기에 집중해야 했다.

  우리의 소망은 모두 이루어졌는데, 익숙함이 싫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불만이 쌓이고 불행마저 느낀다. 다시 말해 익숙해지지만 않으면 우리는 소망을 이뤘다는 기쁨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손에 넣은 물건에 질리지 않고 만족하며 지낼 수 있다면 새로운 물건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사사키 후미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결국 옷장 하나를 통째로 비워냈다. 서랍 속도 말도 못 하게 비웠다. 이제 비워진 방바닥에서 가로로도 세로로도 운동을 할 수 있다. 집 안 모든 곳이 완벽히 비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방 안에서도 더 정리하고 싶은 물건이 있지만 이만하면 됐다. 나름의 시스템이 갖춰져서 정돈도 금방이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 몇 개만 살짝 옮겨주면 된다. 

  방이 비워지니 물건을 사는데 주저함이 많다. 또 다시 채울 일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하다. 자연스럽게 소비를 줄이니 돈을 아끼려 지출을 줄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작은 불편함만으로도 용돈을 줄이게 됐다. 환경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겠지. 여러모로 가치관과 행동이 맞아떨어지는 기분이라 뿌듯하다.

  물건이 비워지고 나서 빈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 지 혼란이 왔다. 남는 시간과 마음에 나는 무엇을 채울까. 당근마켓에 심취하기도 하고 유행하는 이슈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가만히 고요한 상태가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게 무섭더라고. 마음을 다스리는 여러 글을 찾아 읽은 이제야 조금 명상과 고요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한참 멀었지만,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가 있는데 이제까지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

  방을 치우고 가구를 버리는 먼 길을 돌아 내가 발견한 것은 결국 '내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적당히 나를 달래려 물건을 사모으고 방을 채우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아무도 보지 않는 방 안에서도 자세를 바로 해야 진정한 선비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나는 선비가 되고 싶은가 보다. 나는 내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도록.

  스스로 자신에게 최고의 코치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의 진짜 실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다.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경청할 것인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수준이 곧 나의 현재 모습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 팀 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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