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결혼이 끝나고 나는 아빠와 언니(정확히는 차 형부)에게서 각각 10만 원씩 용돈을 받았다. 피곤하다고 그렇게 외쳐댔는데 뒤돌아보니 모두가 피곤했고, 그 와중에 용돈을 받은 건 나뿐이었다. 이래서 막내인 건가.
아빠는 언니의 축사에서 딱 한 가지만을 강조했다. 행복. 아빠의 인생 화두는 행복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몇 가지 주제가 더 있더라고? 그중의 하나가 '어른 다움'이었다. 좀 고리타분한 생각이긴 하지만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되는 거고 어른은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나. 아직 결혼을 안 한 나는 '얼라'니까 제외한다고도 했다. 하하.
그리하여 결혼을 하지 않고도 어른스러울 수는 없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용돈과 선물을 받은 내가 영 어른 같지는 않다. 물론 서로의 수고를 당연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글쎄, 나는 무엇을 베풀었을까 싶기도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방에서 뒹구는 나를 언니가 조용히 부르길래 나는 또 심부름을 시키는 줄 알았지 뭐야. 내가 또 해준다(!)는 마음으로 쭐레쭐레 갔더니만 형부가 봉투를 건네 진심으로 당황했다. 처음이니 기쁘게 받긴 받았는데 언니와 형부에게서 각각 무언가를 받는다는 게 좀 그랬다. 결국 어제 미국 주식 강의료로 쿨하게 지불하고 언니에게 공유해주기로 했다.
언니가 집을 완전히 떠나지 않으니 결혼한다 해도 큰 변화는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혼자인 언니와 둘인 언니네는 전혀 다름을 느낀다. 엄마 말대로 언니도 이제 언니의 집에 가서야 '아이고, 집에 왔다'며 편안함을 느낄 테지. 아직 얼라이긴 해도 한몫을 하고 싶은 나는 무엇을 베풀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어디까지 챙겨야 할까. 어른이 된다는 게 배려해야 할 곳이 늘어나고 편안한 곳이 줄어든다는 슬픈 의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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