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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3.29. 미니멀라이프는 모든 삶의 해답이 아니다

by 푸휴푸퓨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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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지만 아름다운 물건도 좋아한다. 장식할 곳도 없으니 참자며 늘 소비하고픈 나를 막는다. 미니멀 소비주의자의 타협점은 스티커여서, 내 물건은 대부분 스티커가 붙어있다. 내게 미니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예쁜 것을 모으고 싶은 마음이다.

  언니의 신혼집은 맥시멀리스트의 둥지라 부를 만하다. 콜라를 60캔 샀는데 그마저도 제로콜라와 일반 콜라를 각각 샀다. 새 냉장고를 샀지만 자취 때 쓰던 냉장고도 그대로 둔다. 광파오븐이 있지만 전자레인지도 있어야 하고, 그래도 에어프라이어는 다른 이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니 다행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집이 물건으로 가득할 듯한데 사진을 보면 또 그렇게 휑하다. 텅 비어있는 벽과 장식품 하나 없는 집. 언니는 인테리어에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런 반응이라니 슬프다 했지만 내가 지적하고 나서야 전등의 모양을 처음 발견했다(대체 뭘 신경 썼단 얘기냐고). 두 실용주의자가 사는 집에 무용하지만 예쁜 무엇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늘 물건이 많다 여겼던 남자친구의 방을 한 번쯤은 속 시원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방 사진을 찍어 보내라 했는데, 생각보다 더 더 많은 물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장 난 안마의자에 예비군 군복을 얹어놓고 사는 이유가 뭐지. 읽지도 않는 책을 겹겹이 쌓아두고,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레고를 굳이 또 놔둔 이유는 뭐람. 빽빽한 책장과 옷장 문도 열지 못할 행거를 사진으로 둘러보며 나는 여러 물건을 처분하라 종용했다.

  남자친구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다 갑자기 벌컥 짜증을 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독촉하는 말이 부당하게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남자친구는 방에 있는 부모님 짐을 마음대로 정리할 수 없다고 했다. 순한 남자친구의 정색한 목소리를 사귄 후 처음으로 들으니 화보다는 슬픔이 올라왔다. 싸울 마음도 들지 않아 됐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니 또 금방 시무룩 사과하는 목소리가 넘어왔다. 다음날 아침 남자친구는 딱 필요한 물건만 있는 사무실 서랍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자신의 취향도 원래는 이쪽이라며.

  나의 부모님도 그의 부모님도 맥시멀리스트다. 엄마는 언니의 결혼으로 생긴 와인 33병을 보면 마음이 그득하니 뿌듯하단다. 참고로 엄마는 와인을 1년에 한 병도 채 마시지 않는다. 남자친구의 엄마는 주말이면 종종 남자친구를 쇼핑몰에 데려가 이런저런 옷을 사준다. 정작 그는 옷에 관심 없는 무던뽀이인데. 양쪽 부모님 모두 좋은 것이 있으면 사야 하고 고장 나거나 흥미가 떨어져도 버릴 순 없다. 그렇다고 누가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들의 절약 덕에 우리는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았다.

  미니멀라이프가 모든 삶의 해답은 아니다. 미니멀 이야기가 읽기 좋아 자주 들르는 카페의 어느 댓글에서 누군가는 미니멀이 종교 같다고 했다. 삶의 신념을 만들어줘 믿지 않는 이에게 자꾸 전도하고 싶어 진다며, 미니멀 전도나 종교의 전도나 원치 않는 이에게 불편한 말인 건 마찬가지라 했다. 나의 미니멀 이야기를 가족이 잘 들어준 것은 그것이 너무나 옳은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간절히 원해서였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주먹 속에 너무 모든 걸 꽉 쥐려 해서는 안된다. 비우기 위해 그렇게 애쓰면서 굳이 비운 마음에 남을 통제하려는 탐욕을 채우진 말아야지. 마음을 비우는 게 참 어렵다. 마음을 비우고 힘을 빼는 상태를 늘상 유지할 수 있게 되면 나는 도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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