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시절 자소서에 꾸준히 썼던 말은 '저는 직업이란 나를 기쁘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였다. 책을 읽다 단초를 얻어 정리한 직업관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다가 원치 않는 곳의 서류 합격 소식은 기쁘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도서관을 직업의 자리로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내가 사랑하는 책이 있는 곳. 사서가 모두 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서가 되고 싶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도서관의 자리는 좁디좁았다. 나는 돌고 돈 후에야 원하는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처음 책이 가득한 자료실 서가 사이에 섰던 날, 이 회사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과 함께 행복하리라 생각하며 환희에 찼다. 하는 일 중 10%라도 좋아하는 일로 구성되었다면 대단히 성공한 사람일 텐데 이만하면 나는 세상을 다 가졌지 하며.
도서관에 몇 년간 둥지를 틀었다. 매일 꿈같진 않았지만 대체로 행복이었다. 이용자에게 고맙다는 인사가 담긴 메일이 오면 소중히 모아두었다. 이용자에게 말할 수 없는 도서관의 사정을 알았고 퇴근 후 틈틈이 책을 읽었다. 모자랄 것 없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공허가 찾아왔다.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의아했다. 분명 좋아하는 일이고 더 나은 자리를 꿈꾸지도 않는데. 왜 나는 자꾸 가만히 멈추어 있나.
일이 진행된다고 내 삶이 진행되는 것은 아님을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저 열심히 주어진 일만 하면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일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함을 겨우 알았다. 어떤 직업을 가진 내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이 직업 속에서 나는 무엇을 무기로 내세울 수 있는가. 나를 생각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나를 잃지 않으려면 해야만 하기에, 나는 또 나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늘 새로운 자극을 받는 직장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시선을 바꿔 필요한 자극을 알아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언젠가 새로 들어오는 사서에게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도착지에 가봤더니 그곳은 장소가 아니라 길이었더라고. 가만히 서 있는다고 길이 저절로 나를 앞으로 가게 만들어주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걷기 시작하면 그 길 위엔 가끔 보람도 놓여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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