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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7.15. 스포-스의 七月

by 푸휴푸퓨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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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던 6월을 지나 기분이 이상하게 다운되는 7월을 보내고 있다. 만사 짜증이고 부정적이다. 회사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었지만 어쩐지 그 정도가 과했다. 묵직한 두통을 느꼈다. 그래도 마냥 세상이 잘못됐다고 분노하지 않는 건 지난달 호르몬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며 찌무룩한 무기력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지금 괴로운 이유는 내 마음이 아니라 호르몬이니라. 세상은 평소처럼 비뚤어져 있을 뿐 유난히 나쁠 일은 없단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호르몬이 치솟는지 생각하게 된다. 무더운 날씨 탓으로 돌리기가 가장 쉽다. 장마라더니 비를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 왕우산은 커녕 미니 우산도 귀찮은 지경이다. 비는 없어도 습도는 치솟으니 불쾌지수가 가만할 리 없다. 그런데 하루 중 머무는 모든 곳이 만족할 만큼 건조하면서 시원하지 않다. 항온항습기가 설치된 서고에 누운 고문헌이 되고 싶구나.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버텨야 하지만 여름 앞엔 장사가 없네. 이율배반을 온 정신으로 느끼고 있다.

  밀가루 탓을 하고도 싶다. 먹지 말아야함을 알면서도 낮의 사무실에서 기분을 달래려 과자를 집는다. 직장인은 밀가루 말고 딱히 먹을 게 없다고(간식 구입 담당으로써 말하건대 밀가루 말곤 살 것도 없지). 게다가 최근 엄마는 신짱 오리지널 맛을, 남자친구는 신짱 초코맛을 사줬다. 사준 사람에게 잘못은 없지만 먹는 나는 절제가 안되어서 몸에 평소보다 더 거대한 밀가루 폭탄을 들이밀고 있다. 이건 내가 관리하면 되는 문제이긴 한데, 관리가 되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겠다.

 

100년 전 사람들이 싱그럽구나

 

  이 침침한 순간을 나는 놀랍게도 운동으로 버티고 있다. 이런 순간 운동을 멈추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임을 경험적으로 안다. 지구에서 가장 불행한 운동가기 전 30분을 버티고 나면 상쾌한 몇 시간의 저녁을 획득할 수 있다. 딱 10분만 이를 악물고 달리면 발동이 걸리고 힘차게 땀을 흘리게 되리라. 쇳덩이 같은 발을 이끌고 겨우 가는 헬스장은 어째선지 늘 만원이다. 날씬한 사람은 날씬한 이유가 있다고 뚱뚱이는 되뇐다. 그래도 온갖 몸짱들 사이에 고군분투하는 배불뚝이 아저씨 몇몇이 있다(남녀공용 헬스장에 여자 뚱땡이 동지는 손에 꼽게 희귀하다).

  언제쯤 30kg 대의 무게로 진입할 수 있을지 헤아리며 기구 운동을 한다. 50분이 지나면 에어컨 바람을 직선으로 받을 수 있는 러닝머신을 골라 열심히 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함께라면 30분을 넘겨도 머신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 헬스장에서 1분 거리의 집에 허겁지겁 오면 지난한 하루가 끝난다. 찬물로 정신이 번쩍 들도록 샤워를 한다. 몸에서 펄펄 올라오는 땀이 한김 식는다. 선풍기를 쬐면 그제야 좀 사람 사는 세상인 기분이다. 어쩌면 이 모든 괴로움은 그저 더위 때문이려니. 아직 8월도 아닌데 이렇게 괴로워서야.

  근 몇 달간 가장 유머없는 시기에 집단적 유머를 강요받고 있다. 끝날 줄 알았던 영상 지옥은 새로운 곳에서도 계속 펼쳐진다. 한여름의 나는 앞으로 보나 뒤로보나 노잼이지만 억지로 웃긴 척 3초의 웃음을 끼워 넣는다. 풋풋한 향기가 날 어린 친구들이 잠깐의 비웃음이나마 머금어 줄지 나는 차마 알 수 없다. 아이들의 방에 에어컨이 있다면 조금쯤은 웃음이 후해지겠지. 세상이 에어컨을 튼 양 선선해졌으면 좋겠지만 지구온난화를 야기한 인간이 꿈꾸기엔 너무 큰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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