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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1.7.26. 만남의 끝과 시작

by 푸휴푸퓨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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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보았나 TV에서 보았나,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I라서 혼자 노는 걸 누구보다 선호한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주 2회 1시간씩 만나야 했던 젊은이 덕분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다양한 생각을 했다. 꽤나 재미있었다.

로우 머신은 아직 20키로가 한계

  PT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26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과 대화할 일은 없었을 테다. 운동하는 사이사이 휴식시간에 그는 손님 접대용 대화를 이리저리 꺼냈다. 사회초년생은 아직 많이 순수해서 방어막 없이 솔직히도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그 대화가 풋풋하니 즐거웠다. 갓 시작한 연애 이야기(여자친구와의 생애 첫 여행을 위해 두 달을 흥분), 처음 해보는 펀드 투자(ETF가 뭔진 모르지만 IT펀드에 넣었습니다), 쿠팡 딜리버리 아르바이트(비 오는 날 걸어서 배달한다 하고 오토바이를 타면 소득이 꿀), 배틀그라운드 게임(치킨 먹는 건 1등 하는 것), 정말이지 처음 듣는데 되게 유명하다는 노래(사랑이 멜로지 왜 사랑에 멜로가 없나요), 앞머리의 중요성(내 보기엔 거기서 거긴디), 할머니 이사 돕기(훌륭한 장손), 첼시 부츠...

  체대 졸업생인 이 청년은 큰 키에 좋은 몸, 열정 뿜뿜 태도를 갖춘 데다 날티도 나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난다고 했을 때 유능한 PT 선생님을 잃어 내심 섭섭한 마음과 함께 아직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26살의 패기가 멋지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나의 26살도 그랬지. 이직하기를 바라는 나를 부모님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솔직히 지금의 나라면 이직하지 않고 적당히 뭉개다 발령을 신청했을 것이 자명하다. 4년 차이가 이렇게나 크네. 이 친구는 그때의 아팠던 나도 어쩌면 멋있었을지 모른다는 위안을 주었다. 면접 이야기도 숨기지 않고 몇 개 들려주었는데, 내가 사장이어도 뽑을 사람이라 금방 취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주일쯤 지나 역시나 새 직장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9개월쯤 이어진 PT가 끝났다. 나를 위해 소득의 10%를 투자하고 싶었다. 그 투자의 대상이 '새로운 취미'인 줄로만 알았는데 '만날 일 없을 사람을 만날 기회'도 된다는 점을 PT덕에 알았다. 좁으면서도 넓은 지구에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인연이 끝나는 게 내심 서운하다. 어른은 다른 무엇보다 이별에 의연한 사람이겠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인사를 할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디서든 건승하세요.

  하나의 인연이 끝났으니 새로운 인연을 찾아보려 한다. 운동 말고 다른 곳을 기웃거려야지. 퇴근 후 스케줄이 내내 운동뿐이었는데 일주일에 하루쯤 다른 일을 해도 재미있겠다. 새로운 시도란 체력이 받쳐주어야 하는 일이니, 열심히 운동한 지난 몇 달 간의 나와 그런 나를 독려해준 선생님에게 또 고맙다. 매일 그럭저럭 사는 듯해도 조금조금 변화가 있다.

추신1. 미술학원에 다녀보기로 했다. 스스로도 운동하러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아크릴화나 오일파스텔화를 배우면 재미있을 테니까. PT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 결제에 부담이 덜하다. 사실 작년에도 같은 미술학원의 같은 비용을 보며 부담스럽다 생각했는데 1년 사이에 마음이 많이 변했다. 어쩌면 올해의 목표 '필요한 곳에 돈 잘 쓰는 법 배우기'도 이뤄가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다.

추신2. PT를 더 이상 결제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딸을 측은하게 보우하사 10회 더 결제해 주었다. 본인의 선생님에게 한 번 배워보라며. 허허 이것 참, 8월에 열심히 다이어트해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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