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8월 3일)
아름다운가게에 들렀다 피부과에 가서 켈로이드 주사를 맞고 저녁에 PT를 받을 계획이었지만 내내 집에 머무르다 간신히 PT만 했다. 애초에 아침에 엉덩이를 들썩이지 못한 탓이 컸는데, 피부과가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이라고 하여 점점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집에 있게 된 오전 시간을 만회하겠다고 집안 정리를 시작했는데 이거야 원. 작년에 치우다 힘들어 이것저것 쑤셔 넣어 둔 박스를 기어이 꺼내게 되고, 정리를 하게 되고, 언니 결혼 때 받았던 상자는 분리수거가 어렵고... 다양하고도 그다지 쓸모없는 물건과 씨름하다 보니 기력이 쏙 빠져 다 그만두자는 생각을 하고 외출은 미루었다. 그래도 주방 선반 몇 칸, 화장실 조금, 거실장 조금이 듬성듬성해졌다.
일요일에 만들었던 샹그리아를 시음해 보았는데 달지 않고 여전히 술맛이 났다. 설탕을 때려부었어야 했나. 그것도 술이라고 한 잔 마시고는 곤히 잠들었다. 소파에서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운동에 가 새로운 선생님과 PT를 했다. 다음 주부터 저녁 8시 반에 수업을 해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번 주 두 번만 하고 끝내려 했는데 세상에, 선생님 너무 좋잖아요! 엄마가 강력 추천한 이유를 알게 되어 군말 없이 10번을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스쿼트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자세가 가능하네요. 인도에 따라 열심히 운동해볼 요량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스타벅스 컵에 크리스탈 잔을 끼워버렸다. 비누칠하고 쌓아둔 것뿐인데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더 들어가지도 빠지지도 않는 컵은 기름을 발라도 세제를 발라도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활용해도 그대로였다. 4개 세트였던 크리스탈 잔 중 2개를 내가 해 먹었군. 이제 집에 크리스탈 잔이 없다. 우리 모두 유리컵을 씁시다.
오늘 미룬 계획은 내일과 모레의 나에게 맞긴다. 쉬는 동안 집안이 많이 깨끗해졌으면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제 큼직한 물건보단 구석에 숨어있는 작은 물건이 더 많아서 그런가봐. 그래도 엄마가 지난 몇 년 보다 훨씬 버리기에 협조적인 태도가 되었다. 그러니 더욱 많이 치우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 방 안을 호텔같이 만들었으니 다음 타깃은 화장실이다. 더욱 빠꼼한 구석이 많아지도록 애써보겠다.
Day 3 (8월 4일)
이틀째 밤부터 지나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출근은 어떻게 하지!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기 위해 아침부터 달렸다. 하루의 시작은 9시 반 GX 수업이었는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늘 출근하던 시간에 맞춰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9시 반 수업은 늘 듣는 아주머니 모임에 혼자 낀 모양새로 월요일 수업만큼 힘들지 않았다. 온몸을 쭉쭉 늘렸지만 선생님은 뻣뻣한 나를 꾹꾹 눌렀다. 제가 아직도 이렇게나 부족합니다.
점심에는 샐러드에 따라왔던 바질페스토를 활용해 파스타를 해 먹었다. 새우와 마늘을 듬뿍 넣은 파스타는 어찌나 맛있던지 바질을 키우고 싶어질 정도였다(그냥 바질 페스토를 사는 편이 현실적이겠다). 점심을 먹고 늘어졌다가는 어제처럼 집에 있으리란 생각에 1시에 맞춰 외출 준비에 나섰다. 무심코 맞춘 시간인데 직장인의 생체시계가 대단히 정확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가게에 한아름 짐을 들고 갔다. 한낮의 열기가 나를 쪼여대도 포기하지 않아! 물건을 확인하시는 동안 와인잔을 살까 고민했지만 미니멀을 떠올리며 충동구매를 참아냈다. 악기를 기증받는다는 포스터도 발견했는데 올해는 시기를 놓쳤지만 내년에는 보낼 수 있겠단 생각에 기뻤다. 기부하려는 물품이 혹여 반품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모든 물건을 인수해 주었다. 아름다운가게에 몇 번째 오는 걸까. 끊임없이 내놔도 물건이 많다. 또 1년쯤 모아 찾아가야지.
기세를 몰아 제로웨이스트샵 '플라프리'에 갔다. 버스정류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가게가 있었지만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중앙 정류장에 서 있는 잠깐조차 지옥 같았다. 인류는 모두 지옥 불구덩이에 빠지고 마는가! 플라프리는 작았지만 쾌적하고 친절했다. 들고 간 용기와 테트라백, 종이팩을 드리고-도장을 무려 네 개나 찍어주셨다- 천연수세미와 비누를 위한 네트망을 샀다. 무거운 짐을 내보내고 가볍게 떠나려니 아주 뿌듯했다.
오다가다라는 인기 있어 뵈는 카페에 갔는데 문이 닫혀있다. 급히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더니 오븐이 망가져 예정에 없는 휴무라고 했다. 다음 행선지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카페가 있어 얼른 이동하기로. 아까 그 지옥의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려는데 타려는 버스가 1분 뒤에 온다지 뭔가. 제발 오지 마라! 제발 신호야 바뀌어라! 동동거리며 정류장에 갔더니 버스 도착 예정이 없단다. 알고 보니 그냥 차고지에서 나오는 마을버스인데 네이버 지도가 나를 농락했던 것(예끼 이놈). 한참이 지나 도착한 버스는 에어컨이 쌩쌩 나오고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직접 수선한 가방을 메고 이마트 장바구니와 천연 수세미를 들고 다니는 나. 스타일이 제법 좋군.
비건 디저트를 사기 위해 찾아간 익투스는 이런 곳에 디저트가게가 있을까 싶은 곳에 있었다. 자릿세가 조금 나오겠구나 생각하는 나는 너무 찌든 어른인가? 돈을 팡팡 쓰겠다고 언니에게 선언했기 때문에 네 개를 골랐다. 쪼꼬미들 네 개에 20,000원이라니 물가가 비싸긴 하구나. 친절한 주인분 덕분에 기분 좋게 가게를 떠났다. (집에 와서 먹어본 크럼블은 안 달았고, 큰 기대 없이 산 호밀 타르트는 아주 맛있었다)
이제는 제발 내게 커피를 수혈해달라며 내적 외침을 뿜어내는 내 앞에 토비커피가 나타났다. 앞에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교회가 있어 주일이면 카페 알바생이 힘들겠단 생각을 했다(이거슨 교회 앞 카페에서 알바하던 친구를 두었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지). KFC 비스킷같이 생긴 게 진열되어 있어 아아와 함께 시켰다. 여기서 실수가 있었는데, 텀블러와 빨대 모두 챙겨갔지만 하나도 내밀지 않았다. 마시고 가니 당연히 유리컵에 주리란 생각이 패착이었다. 이미 앉아있던 사람들 컵을 살펴봤어야 했는데. 커피가 담긴 쟁반을 보고 나서야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빨대까지 야무지게 꽂혀 나왔다. 이래서야 제로웨이스트샵을 다녀온 의미가 없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나온 디저트는 열심히 먹어야겠죠. 카페는 요즘 유행하는 USM 스타일의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맨 위를 투명하게 하고 그 밑에 책을 진열한 디자인이 제법 좋다고 생각했다. 책이랑 소품을 교체하면 되니까. 똑똑한데. 벽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붙인 간결한 포스터도 좋고 피카소 액자도 좋았다. 하다못해 바닥재도 마음에 들었다. 주인분 인테리어 취향이 제 마음에 드네요.
쾌적한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다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차가운 수박을 허겁지겁 흡입하곤 에어컨 밑에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저녁 때 샹그리아에 사이다를 타 마셨는데 생각보다 맛있지 않아 슬펐다. 설탕을 들이부었어야 했나 봅니다. 킬링타임용 영화 '스파이'를 보고 주드 로가 얄밉게 잘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고, 알찬 하루를 보냈다.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기분이 좋았다. 돈 쓰는 백수의 삶은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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