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8월 5일)
애초에 PT 외에는 아무 계획이 없는 날이었지만 화요일에 뻗은 탓에 나가려면 나가야 하는 날이었다.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해가 쨍쨍하다. 어제 사온 익투스의 파운드케이크와 크럼블을 먹고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는 이번 주를 위해 빌려온 책 중 가장 두꺼웠다. 이번 주 목표로 책 5권 읽기도 세워두었는데, 읽기 편한 책만 5권 읽어서는 마음이 흡족하지 않지.
물건이야기는 추출-생산-유통-소비-폐기에 이르는 물건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책이다. 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필연적으로 오염을 야기하고, 한 번 생산된 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나로 인해 무엇도 과잉생산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책에 그려진 누군가의 낙서에 열불이 터졌지만 아니나 다를까 1장 이후 싹 사라졌다(흥 낙서할 시간에 완독이나 해라!). 200쪽 정도 읽고는 녹다운되어 낮잠을 쿨쿨 잤다. 주말의 내가 읽어 주겠지.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었다. 올여름 첫 콩국수였는데 아주 훌륭했다. 그대로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피부과에 갔다. 고작 지하철 몇 정거장이었지만 땀은 또 비오듯 쏟아졌다. 피부과 대기실에서 어느 젊은이가 다크서클 케어 및 무엇무엇을 위해 100만 원 이상 결제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켈로이드 주사를 맞고 돌아왔지.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심부름을 위해 집 근처 시장에 갔다.
아빠가 좋아하는 천도복숭아, 일요일에 된장찌개가 먹고 싶으므로 애호박과 감자, 명란아보카도 덮밥을 해 먹기 위한 아보카도 하나. 장보기는 즐거워서 마음 가는 대로 사자면 한참을 더 살 수 있었지만 소진할 자신이 없어 소소하게만 샀다. 천장도 없는 시장은 참 더웠는데, 나야 시장에서 덥다덥다 투덜대기만 할 수 있는데 생선가게나 반찬가게는 특히 힘들겠다 싶었다. 하긴. 이 날씨에 닭튀김 집이라고 살만할 쏘냐.
(엄마가 천도복숭아를 비싸게 사왔다고 깜짝 놀랐다)
집에 와서 물건이야기를 100쪽 정도 더 보고 PT를 갔다. 10여 년 만에 철봉에 매달리듯 기구에 대롱대롱 매달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 몹시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끝내 다 시켰지만. 무지막지한 팔 운동도 하고, 칼로리 낮은 아이스크림 추천도 경청했지만 집에 오니 대체 브랜드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 주에 물어보기엔 너무 수줍군.
곤드레밥인 줄 알았던 저녁 메뉴는 어느새 도미노피자로 바뀌어 있었다. 다 먹자고 운동하는 거 아니겠어? 피자를 픽업하기 위해 도미노가 아닌 피자헛에 갔던 아빠의 에피소드를 반찬삼아 신나게 먹었다. 엄마는 컴퓨터방이 너무 덥다고 푸념을 했지만 컴퓨터를 쾌적한 거실로 옮기자는 말은 도통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엄마만의 정신 수련 방법이라고 아빠는 평가했다.
저녁에는 요즘 수강 중인 경제 강의를 들었다. 강의자의 이야기 속도가 내 성미에 비해 너무 느려서 매주 고통받고 있다. 시간과 정신의 줌을 견디고 나면 남는 것이 있겠거니 하며 버티는데, 대체 고등학생 땐 어떻게 선생님을 가리지 않고 수업에 집중을 어떻게 했는지 불가사의할 지경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열심히 하고는 있다고요. 집중력이 얄팍해진 서른 살은 오늘도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흥미로운 하루를 보냈다. 알찬 하루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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