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2.7.19. 결국 일주일에 하루를 못 지키네

by 푸휴푸퓨 2022. 7. 19.
728x90
반응형

11일

  월요일이지만 남자친구를 만났다. 지난주 평일에 내심 만나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는데, 이번 주에는 아예 주말에 약속을 잡더군. 만남의 빈도를 전적으로 내게 맞춰준단 사실을 안다. 게으른 여자친구를 만나는 네가 고생이 많다.

  우리 집 앞에서 만나자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네가 돌아갈 고단한 길을 상상하기만 해도 지친다. 결국 좀 더 먼 곳에서 만났다. 재미있게 먹고 마시고 보고 떠들고 집에 돌아왔다. 말랑하고 따뜻해서 내내 좋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결국 체력이 문제다. 평일 저녁 약속은 다음날 아침의 괴로움이라 여간해서는 원치 않는데, 너와 다정하려면 운동을 해야겠다고 또 다짐하였다.

하늘이 캔디바 같아서 찰칵

 

12일

  요즘 책이 잘 읽힌다.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점심을 활용해 며칠에 걸려 읽은 책은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인구'. SF에 아주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데다 나이 든 여성의 이야기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나이듦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요즘은 멋진 할머니 롤모델이 많다. 지혜와 이해심이 한없이 커지고 싶다.

  한 줄 소감: 교육과 삶의 지혜는 무관하다. 정부의 존재와 과학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14일

  내심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분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쾌차하시리라는 예상을 전제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일주일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의 부재를 휴식으로 느낀다면 썩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군. 상사도 기분이 좋은지 텐션이 마구 높아진 게 느껴졌다.

  텐션은 텐션이고 업무는 업무라 다른 부서와의 협업이 계속 생긴다. 말이 좋아 협업이지 나는 늘 새우가 된다. 이러시다는데 말씀 전하겠습니다. 저러시다는데 어떡할까요? 입만 벙긋대는 새우는 지겹다. 물론 책임을 지는 새우가 되고 싶지도 않다. 모든 걸 방관하는 고래가 되면 제일 좋겠군. 요즘 유명한 모비딕의 향고래도 좋겠다. (하지만 승진에 밀린 새우는 고래 되기가 영 글렀다.)

슈퍼문이 떴던 날

 

15일

  새우는 마음이 지쳐 오래간만에 반차를 썼다. 그냥 모든 상황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물론 용건도 있어 주민센터(라고 하면 옛날사람이라며?)도 들렀다. 집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누웠다. 그저 누웠을 뿐인데 눈을 뜨니 6시가 넘었다.

  금요일마다 오는 순대트럭에 가서 순대볶음을 샀다. 엄마가 사위 맞이 갈비찜을 해줘서 후루룩 짭짭 먹었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먹부림으로 외면하려 했지만 실패한 카톡엔 다음 주에 다른 부서에서 새로운 요구를 하리란 동기의 경고가 와 있었다. 집에 있어도 새우는 결국 새우일 뿐. 오후를 잠으로 날리다니 많이 지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첫 주 휴식이 간절하다.

 

16, 17일

  지구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40도라니, 8년 전의 나는 한여름의 영국은 뜨겁지 않다 생각했었다. 10년 후에는 50도가 넘었다는 뉴스를 보겠지.

  환경을 위해 애쓰는 시간을 넘어 나는 이제 환경을 포기했다. 인류는 한 순간에 각성하여 바뀌지 않고, 지구는 인류의 느린 깨달음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다. 인류는 한순간에 소멸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더 척박하고 괴로운 환경에서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어쨌든 멸망하는 건 지구가 아니라 인류니까.

  흐름을 따르다 더운 곳에서 삶을 마치고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싶다. 다음 세대의 생존을 기대하지 않아서 아이도 낳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을 하면 괴짜 음모론자 취급을 받는다. 10년 후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18일

  출근하자마자 열려 있는 서고 문에 화가 뻗쳤다. 이런 것까지 말해주고 가야하나? 출근한 다른 선생님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타 부서와 회의를 했다. 결국 졌고 못 싸운 협상이었다. 내년에는 발을 빼겠다는 말 대신 내년에는 이렇게 하기 싫다고 상사의 전술에 반대를 말했다. 업체가 자료를 누락시키는 실수를 했다. 할 말이 없어 그냥 손을 저었다. 됐습니다.

  퇴근을 하는데 한숨이 자꾸 나왔다. 회사가 지긋지긋해. 이렇게까지 괴로울 이유가 있나 싶어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타인의 실수가 내 관리 소관이라 여기고 있다. 어쩌다 보니 부서에서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 됐다. 맥락을 다 아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이미 해봤던 일이니까, 내가 해버리는 게 편하니까. 생각이 쌓여 과부하가 오고 짜증이 치솟는다. 내가 쌓은 모래성이 내게 나쁜 영향을 준다.

  작년과 자리의 차이도 없으면서 대단한 중요 인물인양 행동하고 있다. 정신차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스운 나를 깨달았으니 행동을 재정비해야겠다.

ISTJ 동지가 자책하며 내게 이런 짤을 보내고.. 나는 얼른 줍고..

 

 

19일

  이러구러 시간이 간다. 오늘은 별 일이 없다. 조금 더 출근하면 휴식이 온다.

728x90
반응형

댓글